[숨]서로 외롭지 않은 출판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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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숨]서로 외롭지 않은 출판의 방식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그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데 있어 작가의 역할은 적극적, 독자의 역할은 수동적이다. 출판사와 인쇄소와 도매상과 서점과 물류사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전해지면, 독자는 그때부터 리뷰를 쓴다든가 작가를 만나 독서모임을 한다든가 하고, 그 이전까지는 그저 ‘이 작가의 다음 책은 어떤 것이고 언제쯤 나올까’ 궁금해할 뿐이다.


몇 개월 전 모 작가에게 “저, 우리가 독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메일링 서비스 같은 것을요” 하는 제안을 받았다. 구독자를 모으고 그들에게 직접 글을 보내주는 구독서비스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어, 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하고는 왠지 둘이서만 하기엔 민망해서 주변 몇몇 작가들에게 “저…” 하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그리고 나까지 일곱 명의 작가가 모였고, 3개월간 매일 한 편씩 매주의 주제에 따라 쓴 에세이를 구독자들에게 보냈다. 


나의 글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구독자에게 글을 보내는 건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내가 했던 글쓰기 중 가장 즐겁고, 편안하고, 설레는 것이었다. 구독자들은 메일을 열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감상을 답신으로 다시 보내왔다. 3개월 동안 모은 구독자 반응만 원고지로 1600장이었으니까, 작가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이것은 전에 없던 소통인 셈이다. 모 작가는 “저는 이 연재를 한 번 뇌의 주름이 시키는 대로 써보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는 정말로 그렇게 써나갔고, 자신이 주제를 정할 차례가 오자 “저는 뿌빳뽕커리로 하겠습니다. 이런 걸 해야 다들 새로운 글도 나오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진지하고 아름다운 에세이를 잘 쓰기로 평판이 나 있는 작가였는데, 그가 보여준 세계는 그 뿌빳뽕커리만큼이나 ‘작가님, 맛은 있는데 이게 뭡니까’ 싶은 것이었다. 나는 그도, 그의 독자들도, 3개월 동안 정말로 즐거웠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구독경제 안에 자연스럽게 편입된 듯하다. 매달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영화와 드라마를, 음악을, 책을, 그리고 샐러드와 사람까지 구독하는 시대가 됐다. 사실 구독이라는 형태는 이전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최근의 여러 플랫폼을 타고 조금 더 우리의 삶에 가까워졌다. 작가들이 출간 전 연재를 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일간 이슬아’라는 이미 자리를 잡은 개인의 구독서비스도 존재하고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책의 목차를 정해두고 이미 다 쓴 원고를 편집자가 교정해서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형태였다. 이 역시 전통적인 작가와 독자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잠시 참여해본 것으로 쉽게 말하기는 이르지만, 작가들이 구독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글쓰기를, 특히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공유해 나간다는 건 책의 생태계를 확장시키는 멋진 시도가 될 것 같다. 독자들은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출간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책 한 권의 분량이 자신의 e메일함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동안 그것은 개인의 자산이 되는 동시에 경험이 되고, 무엇보다도 작가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또한 남는다. 그가 지불한 구독료 역시 작가에게는 미리 받은 얼마간의 계약금보다도 글을 쓰는 데 훨씬 더 큰 응원이 된다. 


일곱 명의 작가와 책장 위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이 글들은 6월 말 책으로 출간된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런 외롭지 않은 책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xmasnight@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