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가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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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1) 소설가 이외수

격주로 만나는 <김제동의 똑똑똑>. 

지면이 짧아 아쉬우셨죠? 지면에 마저 다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마음껏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먼저 올해 2월 26일자에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 이외수씨와의 정다운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두 분의 만남은 2010년 2월 23일 화천에 자리한 소설가 이외수씨의 감성마을에서 이뤄졌습니다.


경향신문 2010.2.26 



‘별’을 보러 갔다. 밤길을 달려 강원도 화천땅으로 갔다.
가는 길에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하늘엔 별, 화천땅에는 이외수가 있다’라고.
‘함께 가자’, 순식간에 팔로어-댓글 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랬다. 젊은시절 젓가락을 던져 벽에 꽂고, 몇날 며칠 잠도 안자고 술을 마셨다는, 잘 씻지도 않았다는 기인. 방송 때문에 스치듯 뵌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마주앉아 보고 싶었다. 김태원, 김C, 윤도현 형이 ‘싸부’로 모신다고 자랑할 때 ‘나도 끼워줘’라고 칭얼댔다. 나에게 소설가 이외수는 마치 ‘담을 없앤 한옥’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그랬다.

 


사진 정지윤기자


- 트위터에 선생님께 질문할 것을 올려놓으면, ‘꽃씨 옮기듯 옮기겠다’고 했더니 질문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꽃씨 옮기듯 옮긴다고?! 완전 시인이네.
내가 처음 트위터에 한 줄 올리자 1만명이 들어왔어요. 1트윗 1만 팔로어. 트위터계의 신화지.
엊그제 미장원 갔다온 사진 찍어서 올리면서 농담으로 ‘드디어 김태원 CF를 뺏어오게 됐다’고 썼지.
김태원씨가 TV에 나가기 전에는 여기 와서 술도 많이 마셨어요.  부활, 그 친구들 아주 순수하더라고.”

-태원이 형도 술 끊으셨다. 왜 끊었냐고 했더니 “하, 술을 먹으면 술을 못 쉬겠어”라고 하더라구요. 숨을 못 쉬겠어가 아니었다. 한 경지에 이르렀다. 근데 어떻게 술을 끊으셨나요.
계속 마시면 죽겠더라구. 거의 원없이는 마셨어. 생각이 안 나는 것을 보면. 알코올 중독으로 13년 고생을 했었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게 7년 전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사전 MC로 장내 정리를 할 때였어요.
선생님, 어렸을 때 체구가 외소해 사람들이 괴롭히면 젓가락을 표창처럼 던져서 달력에 꽂히도록 하셨다면서요.
달력 17일자에 꽂겠다하면 17일 자리에 팍 꽂고! 건달들이 형님이라고 불렀다면서요. 이야기좀 해 주세요.

“요즘은 겨우 꽂히는 정도일 거야. 옛날 공판장이라는 싼 술집에 갔었어.
짠 콩조림이 유일한 안주고, 20원이면 배부르게 막걸리를 두 사발을 마시는 집이었지. 술을 먹고 있는데 담배가 무지 피우고 싶은 거야.
마침 젊은 친구 4명이 앉아있더라구. ‘담배 한 대만 얻을 수 있겠습니까’했지. 그랬더니 어깨 너머로 주더라고.
네 개피째 빌리는데 이 친구들이 못 참고는 ‘저 새끼를 아작을 내’하더라고.
그냥 놔두면 일어나서 올 태세니까 젓가락 통을 끌어당겼지. 베니어판 벽에 달력이 걸렸는데, 젓가락 하나 뽑아서 ‘오늘 7일이지?’ 하면서 딱 던졌는데 정확하게 꼽힌거야. 3개 던지고는 ‘난 눈 하면 눈이야, 사내놈들이 담배 갖고 쪼잔하게…’하고 나왔지.
나는 나중에 알았어. 그 중 머리를 빡빡 깎고 어려 보이는 친구가 오야붕으로, 춘천에서 청량리까지 장악한 건달이라는 걸. 그 자리에 연극하는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구두수선소에서 수선일을 하던 한 친구가 이 일을 봤나봐. 자기 사장한테 ‘이외수라나 뭐라나,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묻길래 ‘소설가’라고 했다나. 그랬더니 이 친구가 ‘그런 깡패가 소설을 써?!’ 했다더라구.
나중에 그들과 친구가 됐지. ‘존경합니다, 형님!’하며 건달이 나한테 인사하고 다녔어. 벽이 없이 지냈어. 건달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데가 있어. 예술하는 사람을 안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뿌듯해하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존경심이 나름대로 있지. 아주 생양아치가 아닌 다음에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아주 생양아치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공중전화에서 전화 오래 걸었다고 사람 죽이는, 시시비비 따지지도 않는 것들이 생양아치지.
요즘 중고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생을 게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리셋이 안되는데 벌여놓고 보는 거지. 자기 인생도 그렇게 가는 거고.”



-안그래도 트위터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질문이 많더라구요.

책 좀 읽어야하지 않겠나. 게임도 경험이고 자기 수양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정서적인가 하는 것이 문제지. 책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정서적 아름다움은 그 안에 없다는 것이야.

책을 안 읽으면 가슴이 삭막해지고, 마음이 삭막해지면 척박한 토양에서 아무것도 잘 자라지 못하듯이 많은 것들이 안 자란다는 이야기야. 우리는 열대우림에 비가 많이 오니까 수많은 동식물들이 번성하고, 사막에는 비가 오지않아 척박하다고 생각하는데 비도 자존심이 있어 내려서 기뻐할 게 없으면 내리질 않아요. 내려서 받아먹고 기뻐할 놈이 있어야 내리지.

지금 청소년들의 가슴이 그래요. 안에 키우는 게 없고, 삭막하고 메말라 있어.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할 문제예요.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다 공포예요. 시험은 시험대로, 취업은 취업대로 공포.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할 지를 생각하면 초조, 공포, 불안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걸 잊어버리려고 게임에 몰두하는 수밖에….
나 이외의 모든 것이 다 적이 돼버리니까. 수능점수가 절대평가로 인식되고 점수, 돈이 인간 평가기준이 되니까 다 자신 없는 거지.


정서적인 것을 함양시켜줄수 있는 정치 기획들이 필요한 것 같아. 지금 녹색성장이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의) 청소년과 젊은이가 녹색이오. (한데) 이들이 녹색이 아니라 누렇게 뜨지 않으면 전부 갈색으로 말라버렸으니…. 경제성장보다 인간 성장이 우선 돼야지. 젊은이들이 갈색이 돼있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예요."


-그 안에는 분명 어른들의 책임이 클 것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개혁을 부르짖고 임기 안에 개혁 실행할 듯 이야기하지만 개혁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작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어. 교육개혁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 봐야지.”


나는 <환상의 짝꿍>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다. ‘사촌이 논 사면?’이라고 물으면 ‘보러 간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 싱싱함에 덧씌워 ‘배가 아프다’고 가르치는 사회다. 함께 산에 갔던 윤도현 형의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던 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푸름을 어른들이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의 그런 발상은 어른들을 새 것으로, 신선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생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죠.
피동적 삶이 아니라 능동적 삶을 산다는 것,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죠. 한데 이 나라에 맹모(孟母)가 너무 많아요. 다 강남으로 가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어른들이 창의력, 잠재력을 하나 하나 제거시켜요. 그래서 결국 사회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거지.
밤 10시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40대 샐러리맨이예요.”


-프로그램 촬영하는데 어느 아이의 꿈이 미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해 편집되는 바람에 방송에 안 나갔어요. 그 아이가 말한 이유는 미국 사람과 결혼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다고 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50~60년대 그런 꿈을 꾼 아이들이 있었죠. 구호물자 올 때 좋은 옷과 물건이 미제니까, 미제는 다 좋다는 식. 그때와 지금이 같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겁니까. 더는 그런 꿈을 안 가지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낮아서 일단 뭐가 행복인지를 안 알려주는 게 문제지요. (그러다보니 아이들마저) 미국은 행복할 것 같고, 영어 잘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예전에 쓰신 글을 보니까 아이들한테서 모국어 사용할 권리를 빼앗지 말라고 쓰셨던데.

“제 나라 말도 못하는 애한테 외국말 가르친다고 좋을 것도 없고, 필요치 않은 애들한테까지 필수 항목으로 가르쳐야 하겠느냐는 지적이었지.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아 영어 잘 하는 문하생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에게 ‘얇은사 하얀 꼬깔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를 통역해보라고 하면, 못해.
우리 언어가 우수하다는 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공유하는 것인데도, 유독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누구에게나 다 영어를 강요하고 영어를 중시합니다. 납득하기 어렵죠. 표현을 할 때 우리가 죽었다는 것만 하더라도 죽었습니다, 뻗었습니다, 골로 갔습니다, 밥 숟갈 놨습니다, 영면, 서거 등 30여개가 쭉 나온다. 영어로는 DEAD예요. 얼마나 삭막합니까.
먼저 우수한 우리 것을 발전시키고, 소중한 것을 인식시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데 수순이 잘못됐어. 지나치게 사대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 식민지 근성을 못 버린 듯하다. 이런 생각까지 들게 만들어서야 되겠어요?”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탤런트 정보석씨가 전화를 했다. 트위터를 보니 ‘제동이가 거기 간 거 같다’면서.
산골과 도시의 시공간을 초월한 ‘리얼타임’이 무섭고도 신기했다. ‘트위터의 선구자’로 불리는 선생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감성마을에는 아직도 은하수가 보인다.
맑은 날,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떨어진다.
몇 개 주워서 문하생들 목걸이 만들어 주고, 몇 개는 술 담가 놓고….’


아날로그의 맨 앞쪽에 있던 이외수가 아니었던가.

 

-저도 4개월 전에 ‘쌍용차를 잊지 맙시다’라고 글을 올렸다가 초토화됐죠. 제 팔자려니 하고 요즘은 좀 뜸합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오셨으면서, 또 끊임없이 사람들을 찾아 나서시는 것 같아요.

“트위터, 재미 있어요. 산길 걸어 가다가 개미를 밟았는데 개미 거동이 불편해 보여. 그럴 때 개미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제 네가 나를 밟을 차례야’라고 쓰지. 그런데 세상엔 의외로 행간을 못읽는 사람이 많아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자기와 상반된 의견은 무시하고….
좌빨이니, 노빠라느니. 연예인이건 작가건 정부의 정책이나 시대에 대해서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정치적인 것일 때는 더 극단적이고 민감한 것 같아요. 인터넷 들어가서 말 조금 잘못해도 공공연하게 좌빨로 몰아갑니다. 노빠라서 그런다나 어쩐다나. 이런 것들은 없어져야 할 풍조인데…. 이상하게 집권세력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촛불, 집회, 인터넷 등의 단어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연예인이건 작가건 정부의 어떤 정책에 대해, 시대에 대해서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 같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보면 아직도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상하게 집회 공포, 촛불 공포, 인터넷 공포를 갖고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의 특색이다. 촛불, 집회, 인터넷이라는 말을 꺼내면 깜짝 놀라요. 자기네들도 하면 될텐데. 저는 세계 소설가 팔로어 랭킹이 1위다.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지만. 글로벌 랭킹이 4위, 아트 분야가 1위, 남한 트위트 랭킹 1위다. 김연아는 한국어로 분류가 안되고, 이찬진 대표가 2위, 가수 보아가 3위이고.”

체질적으로 세속을 싫어해요. 그러나 권력, 금력 같은 것 보다 끊임없이 사람이 그리워요. 가까운 소설가 김성동씨는 ‘절에 있으면 속이 그립고, 속에 있으면 절이 그립고’라고 했어요.
나는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나 뿐아니라 마누라, 아이들, 온 식구가 사람을 다 좋아합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찾아오는 분들 중에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안돼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가장 기본적 예의는 지키고 배려해 주는게 좋은데….”


-산에서 개미 말씀하셔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제가 산에 한 번씩 '업히러' 갑니다. 업힌다는 말이 참 정감있는 말인 것 같아요.

“나는 천식 때문에 산을 못 탑니다. 산 못타는 것을 이렇게 변명하지.
야, 올라갈 여지가 남아있는 산은 덜된 산이다. 제일 좋은 산은 많은 생명을 키우고 자기를 내주고 한없이 낮아진 산, 육신은 다 내줘 버리고 기운만 남아있는 산, 그게 바로 평지예요. 어떤 생명체이든 다 살잖아. 정말 높은 산은 센 놈만 살아남는데. 많은 생명체를 키워서 수평선과 같은 산이 제일 좋은 산이다. 나는 그래서 산에 안 올라갑니다.”






-선생님은 글을 잘 쓰시니까 산도 만들어 내시고 바다도 만들어내시고. 의미를 부여해 사람들한테 산이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저도 어릴땐 산에서 칡을 많이 캤어요.
그때는 돈 주면 살 수 있는 다이아보다 칡있는 곳을 잘 알아서 잘 캐오는 게 인기였는데. 그게 진짜 ‘짐승남’이었죠.
저는 옆 집 어머님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농촌의 그런 공동체가 주는 느낌이 참 좋은데.

(이 선생만큼이나 유명하신 사모님도 전적으로 동의하셨다. “옛날 시골, 자연 속에서 살면 내 아픔도 남의 아픔, 내 기쁨도 남의 기쁨이었죠. 도시에서는 남이 슬픈지 기쁜지도 모르잖아요. 한마디로 인간다움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라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하는데. 자연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만도 한데요.

가장 이상적인 삶은 나흘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고, 3일 도시에서 일하는 것으로 봐요. 깡통이라도 하나 주워 화분 삼아 잡초라도 하나 심어서 놓고 보는 것도 자연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인데,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이라도 쳐다보고, 무엇인가를 심어 키워도 보고.”


-젊은이들은 선생님께 길을 많이 묻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헛헛하다고 토로하면서.

“인생에 대해 묻는 말이 많아요. 그럼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과 인성을 같이 갖춰야 한다고 얘기하지.
가령 불의와 결탁했을떄 내 삶이 편해지고, 정의를 선택했을떄 내 삶이 불편해진다면 어느 편을 선택하겠느냐. 젊은이들은 불의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반문합니다. 어느 쪽이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가라고. 제일 큰 희망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사실은 순리대로 사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 학교나 가정, 선배들로부터도 잘 못 배운다.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많이 알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느끼려고 애쓰는게 중요하다는 것이예요.
더 많이 깨달으려고 애쓰는게 중요하다고. 태산같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티끌같은 깨달음 한 번에 다 무너져 버리는 것이니까. 가슴이 삭막해지면 감각도 무디어져서 느끼지를 못 하는 게 현실이잖아.
우리의 정서 중에서 멋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깨달음을 얻어야 간직될 수 있는 멋있는 인품을 가졌을 때 하는 말이죠. 서양의 문예사조니 철학사조, 예술사조는 전 사조의 반동에 의해 탄생을 한다.
서양에선 철학의 대상이 신이 되기도 하고, 자연, 경제가 철학의 대상이 된 적도 있죠. 이건 아직 철학의 대상을 못 찾았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깨달음이 철학의 대상으로, 몇만년간 변하질 않았죠. 동양에서의 사조는 전 사조의 반동이 아니라 온고이지신이었죠. 이게 더 순리에 맞는 겁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순리를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인간이 짐승을 닮지않는 게 순리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책 읽는 것,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이 있는 것, 철학과 소양을 가진 것은 인간밖에 없다. 그걸 못 갖추면 벌레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지요.
인간의 출발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인데, 그걸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시급히 개선대야 합니다. 이미 이성이 시대를 주도하는 세상은 갔고, 이제는 감성이 시대를 주도한다고 봐야죠.”

-아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내면적인 것인데, 눈에 안보인다고 그저 외형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가치의 왜곡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책읽기의 중요성을 알지만 먹고 살기 바빠 죽겠다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책을 읽어도 먹고 살기 힘들고 안 읽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요. 자기를 반성하기보다 두둔하고 핑계되는 사람은 자기 발전이 느려질 수밖에. 책 많이 읽는 사람도 먹고 살기는 바빠요. 다 핑계고 가치관의 차이지.”

마침 사모님이 내가 상탄 것을 기념한다며 잔치국수를 끓여내 오셨다. 미모로 소문난 그분이시다. 이 선생님은 당신이 여복이 많다면서 은근히 사모님을 치켜세우신다.

“두 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이 난다는 걸 잘 이해를 못해요.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 여자들이 다 예뻐보일지도 몰라. 나에게 우리 집사람은 늘 엄마 같아요. 내 머리를 빗겨줄 때도 모성을 느껴.”




-저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잘 모릅니다.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외로우면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지금 아빠라고 부를까, 아님 아버지라고 부를까 하고 말이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제가 포경수술을 못했거든요. 하하.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실 선생님도 외향을 보시는 것 같은데요? 저도 글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 팔로어를 만나고 싶은데…. (웃음) 내면을 진짜로 보면 외향이 안 보이는 시점이 오는 것 아닙니까?

“(박수를 치며) 내면을 중시하는 이유가 매력 때문이죠. 매력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겁니다. 예쁘다는 것은 외형이고.
소크라테스가 이런 애기를 했어요.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가는데 어떤 때 가장 행복해지냐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많은 사람들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진다고….
그럼 어떤 것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 하면, 아름다운 것이 사랑받게 마련이거든요. 외형적 아름다움은 시간에 자유롭지 않지만,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른다고 퇴락하거나 변질되지 않아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배어나올 때 매력이라는 겁니다.”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죠. 사람들을 웃긴다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이 없으면 형성될 수 없는 것으로, 선생님에게 펜이 있다면, 저한테는 마이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부대껴서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조금 멀어져 있으면 또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결국 사람들이 모두가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죠.”







-나중에 트위터 토크쇼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트위터는 무한히 변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전 이미 트위터 문학교실을 개설했습니다. 6만7000명 중에서 4명 뽑았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위주로 뽑은게 아니라 글을 써보려는 의욕이 넘치고, 암에 걸린 엄마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사람 등이지.
나는 나쁜 놈은 좋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다. 4명과 한 달 지내보고, 성과가 좋으면 더 늘릴 생각이다. 이찬진 대표한테 문학 교실, 미술교실 이런 것을 할 수 있도록 부가기능을 개발해달라고 건의하고 싶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 있을텐데….
김제동씨가 하차 할때도 트위터에 비판적인 트윗이 많았어.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어요. 언론탄압의 시작이라고.”


-제가 4년 했으니까 많이 한 거죠. 잘했다고 피디연합회에서 상까지 주셨으니 기쁘죠.

문제는 KBS사태든 MBC사태든, 이번에 SBS 스포츠중계 독점 문제이든, 보면은 언론에 대해서 긍정적 시각을 갖기 힘들다는 거죠. 세인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나는 어쨌든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얘기를 안 할 작정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얼마든지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것과 사람들이 사람들과 예술가로서 일침을 가하는 것은 틀림없이 구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정당, 정파 이익이나 입장 대변하는 것과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분명 선이 그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비극과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의 되풀이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되풀이니까, 백성이 참으면 안된요. 그것은 정치적 성향이 아니에요.
역사야 시간 자체의 속성이니까 불안해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비극이 되풀이 되거나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권력에 의한 것이지 역사에 의한 것은 아니거든.
그런 것은 작가로서 일깨워줘야하는 문제이지. 그것을 일깨워준다고 기분 나빠한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요. 작가들에게 집회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라고 정부가 통보나 하고.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지!”


 -제가 4월에 미국 하바드대학에 강연하러 가는데 해줄 말씀을 좀 주세요.

“미국은 미, 마이 등 나 중심인데 한국은 우리라는 표현을 씁니다. 모든 일을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우리도 잃어가고 있는데, 잊어서는 안되는 안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편하게 왔던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밤이 깊어갔다. 선생이 산중생활에서 깨우친 진리를 훔치고 싶었다.

그 새벽, 감성마을을 나서면서 산골과 도시의 아득한 거리를 생각했다. 또 텅 빈 내 자취방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난 그저 한 마리 짐승처럼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으므로. 에이, 짐승을 닮지 말라 했거늘.


화천/정리 이영경 기자


지면에 실린 <김제동의 똑똑똑>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251834135&code=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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