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정희 민주노동당 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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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12) 이정희 민주노동당 새 대표

여의도에 웅장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돔형의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난 엉뚱하게도 ‘돔구장’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가 준우승을 했을 때 국내에도 돔구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나는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주는 야구선수들에게 돔구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돔형의 의사당에선 매일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싸움질이 난무하지만 돔구장이 들어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즐거운 야구가 펼쳐질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희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TV나 온라인을 통해 봤던 이 의원은 늘 단호한 표정으로 차분하면서도 매서운 질책을 하는 ‘철의 여인’이다. 네티즌들의 표현을 빌리면 고위 관료들을 ‘떡실신’시키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그에게선 웃음, 눈물,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났다. 




김제동 “혹시 20대로 돌아가신다면 좀 더 나이 차이가 적은 분과 연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어요?”

 이정희 “후후. 설마 제가 연애를 한 번밖에 안해봤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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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들어오는데 상당히 고압적인 절차를 겪네요. 이런것도 더 욕들어먹게 하는 것 같고. 그런데 국회 전체가 욕을 먹을 때가 많잖아요. 그때는 싸잡아서 같이 드셔야죠. 어떡하겠어요.

=예.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국회의 이미지나 국민에게 군림하는 듯한 태도가 바뀔때가 오겠죠.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wbc 준우승 할 때 우리도 돔 야구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국회는 이미 오래전에 돔을 만들어줬는데, 국회보다 훨씬 많은 기쁨을 주는 집안에는 왜 돔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기분 나쁘시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바깥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국회라는게 이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일인데도 국회의원은 글자 하나 바꾸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게 많아요. 천억원, 이천억원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고. 그 예산의 의미 하나하나가 무척 큰 것인데, 그저 협상하면서 숫자 조정하고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죠. 그런게 당황스러웠고 참 많이 서글펐어요.

=저도 국회에 오는 것이 오늘이 두번째에요. 들어오면서 느낀 것은 초심을 유지하기가 참 어려운 장소다 하는 것이죠. 들어오는 입구부터 여러가지 분위기나 여러가지의 것이 초심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국회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요. 국회의원과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 그 시스템에는 찬성하지 않아요. 국회의원도 출입증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처음에 놀란 것은 총선 후 국회에 왔는데 직원들이 다 알아보시는 거예요. 당선자 얼굴을 익히려고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그게 당선자에 대한 예우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오히려 불편하더라구요.
그에 반해 드나드시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 불편을 느끼는지 몰라요. 특히 노조에서 일하는 분들은 조끼를 많이 입으시잖아요. 그거 입고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디가냐고 꼬치꼬치 캐묻고 가방검사도 당해요. 못들어오게 해서 제가 직접 모시러 갈 때도 있지요. 언제 한번 그런 현장을 잡아서 국가 인권위에 진정해야겠다는 생각도 햇어요.

=얼굴 외는 것 말씀하시니까 선임들 사진이랑 이름 갖다 놓고 외던 군대시절과 비슷해요. 대대장, 사단장까지다 외우게 했지요. 아유, 학교공부보다 더 힘들어요.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추진도 쏙 들어갔죠? 그러니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뱃지만 떼면 아무도 잘 모르잖아요.ㅎㅎ. 어떤 권위주의나 힘 같은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 같은게 느껴져요.

=권위는 한편으로 잘 유지하고 활용해야할 측면도 있어요. 국회의원 의석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애쓰시거든요. 의석이 가지고 있는 힘, 정부기관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실력과 영향력을 갖추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그렇지만 그 외의 것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참 부담스럽죠. 이게 사람을 계속 안락함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아서요. 스스로 참 많이 경계하지요.

=의원님 말씀은 위임받은 권력은 활용해야하고. 즉 뽑아주신 분들로 부터 온 것이므로... 그리고 개인이 가지는 권력은 지양하고. 그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거죠?

=굉장히 정리를 잘하시네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오른쪽)가 20일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취임 인사차 방문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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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어쨌든 인간 이정희는 소박하고 싶고, 위임받은 국회의원으로 정부를 상대할 때는 힘을 가져야 하고. 의원님 말씀 100% 공감해요. 그런데 제가 또 민노당 대표님 만나서 100% 공감한다고 하면 좌파라고 공격받겠죠? 아휴. 한나라당 대표도 선출됐는데 그럼 한나라당 대표님도 만나야 할까봐요. 하하

=신영복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윗집 아이가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울면 올라가서 그 아이들 얼굴을 보고 내려와라. 그러고 나면 그렇게 시끄럽지 않을것이다. 라고 하셨어요. 저도 집 근처에 시끄럽게 짖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랑 친해지고 나니까 그다음엔 그 소리가 안들리더라구요.

=전 공동육아를 했어요. 어린이집에서 만난 분들과 9집이 모여서 같이 집을 짓고 마을처럼 살아요. 늘 부모들이 드나들고 아이들과 어울리고. 시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의원님 보면 항상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다니시잖아요. 국회 밖으로 다니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시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이=사람들의 문제가 일어난 현장,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고 들은 느낌과 모습과 말과 공기. 이런것이 저에게 강한 사실의 인상을 남겨요.
저는 사실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직접 보는 것은 정말 달라요. 통계를 넘어선 사람의 느낌,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사회적 배제. 이런 것이 사람을 만나면 정말 달라진다는 것을 느껴요.
제가 작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17일 넘게 싸울 때 당사를 그곳으로 옮겨서 머물렀어요. 바깥에서 보면 살벌한 대립이 일어나는 것 같고, 이런저런 이미지가 형성돼 있잖아요. 거칠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 밖에서 안에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기엄마의 소망은 남편이 잘, 무사히 나와서 김치찌개를 끓여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새벽녘에 헬리콥터가 주기적으로 공장위를 돌았는데 그 때 노동자들이 느끼게 되는 공포심이 어떠했을가요. 거기서 느끼는 공포감도. 굴뚝에 올라간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중에 헬기 로프를 통해 끌어 올려지는데 석양무렵에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요. 그런 모습이 너무 오래 남아요. 잘 안없어지고 . 나중에 그분들이 인사하러 오셔서 악수를 하시는데 손이 성한분이 없더라구요. 무척 속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는 귀족노조다, 하청업체들은 어떻게 사느냐...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리 생각할 논리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논란에 대해 말씀하실 의무는 있다고 생각해요. 당대표가 되신만큼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회갈등을 조절해야 하는 위치에 오셨습니다. 이제 그런 책임감 생긴 자리에 계시니까요.

=그럼요. 우리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다면 어떻게 사회정책들을 이끌어야할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봐요. 쌍용차 파업이 시작된 것이 지난해 1월초인데 그전에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 사무실에도 못들어왔대요. 그만큼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조가 새로 바뀌고 집행부가 바뀌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기 시작했어요.

파업 끝난 뒤 한 정규직 노동자가 말씀하시길, 파업기간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우리가 한발 움직여 한번 일하는 동안 그들은 두발 움직여 두번 일하더라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만큼 더 존중되어야 하고, 개별의 고통을 함게 나누고 함께 나가는 것을 해결해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거기서 발전과 서로 공감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 개인의 새로운 깨달음이지만 그것을 막는 사회적 장애가 아직도 많습니다. 당장 비정규직은 교섭권 자체도 없죠. 대화를 못하는거예요. 대법원 판결까지 5, 6년을 싸워야죠. 대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제도하에서는 대화도 못하는 상황이죠, 정치권이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권은 우린 책임없다고 빠져있죠. 결국 정치권은 제도를 만들고 행정지원을 해야합니다.

=최연소 당대표라고 하시는데 저희 막내누나보다 어리세요. 저는 누나가 다섯명이라 더 이상은 사양합니다. 너무 치여살아서. 결혼할 사람에게 미리 미안하죠. 같은 이야기 5번 듣고 결정타는 꼬장꼬장한 시어머니가 또 날릴텐데. 당대표시면 7만 당원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셔야 하는데. 누나같고 엄마같고, 아니면 저희 집처럼 엄마가 아빠의 역할까지 대신해야 할 것이고.. 저희 어머니 표현을 빌자면 아들삼아 남편삼아 키웠다고 하세요. 부담스러우신가요?  어떠세요. 당을 꾸려나가는 입장. 당대표의 입장이 생기신거니까.

=제가 정당에서 일하면서 느낀 가장 새로운 경험은 혼자하는 일이 아니구나, 같은 정치적인 지향을 가진 많은 분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져 단단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나를 당대표로 만들어준 당원들도 그 마음인 것 같고요. 많은 노동자와 농민, 지역 주민들과 함게 하는 국회의원을 만들어주신거죠. 그런 분들이 자신이 해왔던 일과 해야할 일을 책임감있고 안정감있게 해주리라 하는 것을 기대해주신 이죠. 국민에게 부드러우면서 명쾌하게, 또 민주노동당의 원칙을 지키면서 국민에게 좀 더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선거운동 기간을 거치면서 무거움을 내려놓았고 자신감을 가지고 활력있게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순간순간 흔들리시죠? 자신감이?

=2년전 국회에 들어왔을 땐 벼랑끝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흔들리는 시간이 대단히 적어졌어요.


=저는 요즘 흔들리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아프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어머니를 포함해 누나들, 친구들, 형들 등등이 진보, 민노당하면 강성, 심하게 말하면 빨갱이, 종북, 친북 이런말을 해요. 국가혼란세력이란 이미지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죠. 진보의 분열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들도 똑같구나 하고 느끼고. 어쨌든 그런 이미지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얼마전에 천안함 특위가 열렸잖아요. 첫번째 회의에 가서 북이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그 표현은 적절하다고 보이지 않는데 어쨌든 북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까 고민했죠.
우리 국방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정전협정을 뒤져봤어요. 그 정전협정 서명자가 중국, 북, 유엔사. 이렇게 세 주체죠. 분쟁이 생기면 합의해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동조사를 하도록 돼 있고 합의가 안 될 경우 한쪽 수석대표가 와서 조사할 수 있게 돼 있어요. 그래서 북한이 사용한 검열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지만 한쪽 수석대표인 북 입장에서 조사하는 차원의 해결책은 찾아볼 수 있지 않느냐 했더니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이더군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북의 검열단을 받자는 사람하고 우리가 같이 회의해야해? 이러면서 나가시더군요. 갈등으로 치닫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방법이 없느냐고 이야기한 건데 좀 당황스러웠죠.

그리고나선 어뢰 카탈로그 이야기를 했더니 김태영 장관께서 북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려 애쓴다고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 참 어이 없었죠. 법률을 해석하는 사람 입장에서 차근차근 따져보고 , 제기될 문제를 제기해보고 할 수 있다고 봐요. 결국 해결책은 차근차근 말하는 것 밖엔 수가 없죠. 실제 그 사건이 해결되어가는 양상을 봐도 공동조사 하는 것이 유일한 출구전략인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앞뒤를 잘라내고 우리가 한 말의 한 부분만 보면 빨갱이 취급을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린 근거와 정황을 차분하게 말하면서 해결해 나가자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천안함 뿐 아니라 여러가지 문제에서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친북, 종북 하다못해 제 어머니 친구들은 빨갱이 아들 뒀다고 하셔서 저희 어머니도 고민하시는데 전 극우민족주의인것 같아요. 애국가 들으면 눈물나는 사람이거든요. 어쨌든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에 관해,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에 관해 아직도 의심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과연 전체 의견을 대변할 진보정당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일부 과격 세력만 대변한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할까요.


=두가지가 있어요. 우리 국민들의 집단적 지혜가 굉장히 성장했어요. 치우치지 않고 열린 자세로 토론과 논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이것이 언론이 전해주는 것을 뛰어넘는 스스로의 인지능력과 학습에 대한 열정이 생긴것 같아요. 그럴 수 있기를 믿고 그럴 수 있는 통로를 찾아가야 하죠. 우리가 말하는 근거와 상황과 논리를 차분히 이야기하면 충분히 이해해주세요.
제가 변호사 생활 10년을 했어요.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인권의 영역을 이야기했어요.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 성전환. 이런 부분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법관을 설득했는데 불가능할것 같던 설득이 돼요. 진보의 능력도 그정도 성장했어요. 이번에 울산 목포에서 기초의원 포함해 출마한 우리 당 후보들이 다 당선됐어요.

=자식자랑하듯이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셨습니다.

=지역주민 속에서 같이 일하고 신뢰를 얻으면서 그것이 선입견을 무너뜨린거죠. 언론을 통해 봤던 때의 거리감과 장벽이. 대구에서도 민노당 기초의원이 1등했어요. 2012년까지는 일정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뢰를 쌓는 것이 달라졌거든요.

=저희 지면에서 정치인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개인적인 십자포화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창문에 붙은것. 전혀 도움안됩니다)

                                                            <위클리경향·사진 김석구 기자>

=국회의원은 4년의 유한권력, 계약직, 비정규직이쟎아요. 그러면 더 국민들을 신경쓰고 눈치봐야 하는데 선거기간 중에만 눈치보는 것 같아요. 표 가지고 가서 표의 유효기간이 다 되면 그 때부터 몸 닳고, 화장실 갈 때 필요하고 쓰고 버리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의 표가 말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왜그렇게 될까요? 정치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묻고 싶어요.

=아프간 파병안을 올해 2월인가 통과시켰던 것으로 기억나요. 2011년 6월에 미군이 철군합니다. 우리 파병은 그해 12월까지로 2년6개월이죠. 지금까지 어떤 것도 1년을 넘었던 파병기간 없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토론도 필요한 문제인데 한나라당이 그러더군요. 국민이 우리를 지지해준거니까 우린 통과시킬거다 라고요. 한나라당 의석이 다수니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게 가슴에 박히더군요.
한나라당이 말한 국민의 지지는 2008년 4월9일. 그 시점에 박혀 있는 것이고 그 시점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것이 4년, 5년 내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회의 시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에요. 그 시점의 사람 마음만 보는 것이지 그 이후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를 보려하지 않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라고 생각해요. 시계가 가는 것처럼 국민의 마음의 시계가 돌아가는 것도 보지 않으면 안되죠. 그럴려면 여당은 충분히 열려있어야 합니다. 4대강 논란이 중단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고. 정치인 스스로가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대변하고 절박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대의민주주의는 이 좁은 여의도라는 섬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의제도 좋고 옳고 그름도 중요한데 제발 좀 싸우지 마라. 이에 대해 여야 모두 할말이 있을겁니다만 이런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원님, 전투경험도 많으신데..ㅎㅎㅎ. 파병가셔도 될 듯 합니다.

=ㅎㅎ. 전 평화주의잡니다.

=물론이죠. 왜 평화주의자가 싸우게 됐는지 사실 절박한 설명들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뉴스 이미지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보기엔 좀 싸우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거죠.

=2008년 12월 정기국회부터 올해 지방선거 전까지 국회가 열리는 기간동안 2009년 용산 참사 직후인 2월 국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직권상정이 없었던 적이 없어요. 너무 중대한 문제가 토론되지 않고 일정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처리되는 양상을 봐와야 했어요. FTA도 질서유지권 발동해서 처리하고 빠져나간 것을 보면 국회에서 일어나선 안될 민주주의 파괴가 일어난거죠.

도저히 법률가 입장에서 이해가 안되더군요. 분노가 많이 생겼어요. 이런걸 그냥 참고가야 하나 하는 생각. 이 분노를 어떻게 평화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계속 생각했죠. 충돌이 생길 때 얼굴을 보면서 이러지 마시라, 말리면서 조금이라도 참으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대화는 대중에게 전달이 안되죠. 지난해 4대강 예산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강기갑대표, 홍희덕 의원, 저 이렇게 셋이서 국회본회의장에서 12시간을 서 있었던 적이 있어요. 석달을 산에 못갔어요 . 발이 아파서요. 도저히 통과되서는 안될 일이 통과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싸울수도 없고 주저앉아 울부짖을 수도 없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죄스럽더라구요. 왜 우리는 이것밖에 힘이 없을까. 그래서 서 있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는 지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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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8일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치 중인 가운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국회의장석을 붙잡고 버티고 있다.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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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많으신 편이죠.

=네.

=제가 지금 조금만 더 하면 세번은 더 울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눈물이 많다는 것은 약점이 되기도 하고 강점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 이정희로서는 굉장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이젠 대표 아닙니까. 권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이정희와 국회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 이정희. 집에가면 엄마 이정희. 물론 아주 억척스러운 어머니 같지는 않습니다만. 여러가지 역할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가지 페르소나. 물론 저는 산악인 김제동, 방송인 김제동 밖에 없지만요. 여튼 나도 이럴 땐 보수적인 사람이네 하는 느낌이 들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밖에서 보기는 달라보일 것 같아요. 아이랑 있을 때는 일반엄마의 일상이죠. 만나서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잘 웃는다고 하고 TV에서는 너무 잘 울고. 국회토론에서는 굉장히 날카로와 보이고. 제 안에 있는 것은 딱 이거예요. 맑게 살자, 밝게 살자. 해오던 직업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한데 제가 대변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법적 대리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분들의 대표역할을 해오는데 그분들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을만큼 하고 싶어요. 그분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설득을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신뢰,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직업적 책임의식을 느끼고 삽니다. 그게 부여받은 책임이기도 하고요. 마음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분들을 위해 훨씬 낮아지고 가장 부드러운 모습으로 열어놔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공존하는거죠.

=드라마도 보세요?

=사실 볼 시간이 없어요.

=저희 어머니 같은 사람과 수다떨고 그럴려면 보셔야 하는데. 지역주민들이나 어머니 같은 분들과 수다떨려면 드라마 필수거든요. 개그프로는 뭘 보십니까?

=개그콘서트는 종종 봐요. 거기 강기갑의원님 종종 나오시죠.

=제가 전에 느낌표라는 프로그램할 때 강의원님을 뵈었어요. 그때 국회의원이란 분을 가까이서 처음 본건데 전 누가 강의원님인지도 몰랐어요. 보면서 국회의원 되게 만만하네, 이 아저씨는 뭐지? 하는 그런 느낌이었죠. 사실 방송 초기에 제 매니저가 잘생겼기 때문에 저는 방송국 못들어가고 매니저만 방송국 들어간 적도 여러차례거든요. 
그나저나 한나라당 대표도 선출됐는데 어떻게 협의해야할까요? 어려움도 있겠고 경력, 나이, 성향 등 여러가지 차이도 많은데 어떻게 이 간극을 좁히실건지, 그럴 위치에 계시기도 한 상태잖아요.

=정치권이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에요. 정당의 대표는 그것을 뛰어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원칙이고 기준이죠. 서로가 서로를 대하고 만날거라고 기대해요. 견해의 차이는 토론을 통해 차분하게 극복해나가야죠. 토론의 기회가 보장되고 법적 절차가 지켜진다면 상당부분 민심과 다르게 가는 일은 많지 않으리라고 봐요. 얼마나 국민의 목소리를 잘 전달하고 힘을 전달하느냐가 중요하죠. 결국 변화의 목소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책임이고 몫이거든요.

=안상수 대표도 과천 사시죠. 사는 곳의 공기가 다르겠네요. 같은 법조인인데

=법조인의 장점은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 기준에 대해 잘 아는 위치에 있다는 거에요. 주의를 조금만 기울이면 접근을 잘 할 수 있고 그게 장점이죠. 그런 점이 최대한 발휘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많은 장점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게 발휘되길 바란다는 말씀이시네요. ㅎㅎ. 사법시험 치르실 땐 어디서 공부하셨나요.

=집에서요.

=산이나 절에들어가서 속세와 담을 쌓고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는가요? 그렇게 해서 할 수 있으면 저도 해볼려고요. 그런데 정말 집과 7, 8년씩 연락이 끊길 수 있나요?

=7, 8년간 공부한다는 것은 7, 8년간 원서를 낸다는 것인데 그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죠. 글을 모르는 분이 대신 응시 신청을 할 수는 없을테고요.

=사법연수원에 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사회적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개천에서 용나서 판검사 시켜서 우리 집안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그렇게 보상받으려 하면서 비리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저도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인데, 물론 용이라고 판단 안되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짜 용된것 맞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는데 어떻습니까. 단 처지면 너희들 잘못이라고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예전 신분사회는 죄책감은 가질 필요가 없었어요. 태어날때부터 그랬으니 . 지금은 오히려 아무 벽도 없으니 타고 넘어라 하지만 유리천정이아니라 유리방안에 갇힌 느낌이에요. 김용택 시인께선 부잣집 아이들이 인성도 좋아지는 시대가 와버렸다고 하셔요. 너무 슬프죠. 출발선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법시험합격하고 연수원 들어간게 97년이었어요. 물론 당시에도 흔하지 않은 케이스였는데 찢어지게 가난하고 홀어머니가 키운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시생 시절 만난 가난한 처자와 결혼할지 여부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도 드문 케이스였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사람이 없는것 같아요. 부의 세습, 교육의 세습, 이제 그것이 직업의 세습으로 이어지고 수명의 세습으로 가고 있어요. 어려움, 사회적 배제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힘들고 처참한 실상을 접해 보지 못한, 물론 저도 그런 처참한 실상을 겪었다고는 할 수 없는데 어쨌든 그런 어려움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법관이 되고 로펌에 가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죠. 그게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사회의 가치관과 판단기준도 사회적 배제를 당연시할 것 같아요.

정부가 어느만큼 해야한다는 판단이 중요한데 사회적 약자나 개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당연시하는 것이 걱정이죠. 그래서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로 바뀌고 그런 정책적 시선이 바뀌어야 해요. 그 첫단계가 이번에 논란이 됐던 무상급식입니다. 선별적 복지의 문제는 이런거죠. 너 정말 어려워? 거짓말 하는 거 아냐? 하고 계속 물어봐요. 사각지대를 없앨 수 없죠. 정말 도와줄 사람만 도와주겠다고 하기 때문에 정말 도와줘야 할 사람을 못도와주는 경우가 계속 생기는거죠. 사람들을 의심하고 눈치주는 사회적 배제인 셈이죠. 그걸 없애는 최초의 시도가 무상급식입니다. 그런 보편적 복지가 건강보험, 의료문제 등에서 펼쳐지기 시작하면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을거예요.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이 노력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태어나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도 사회에서 존중받고 보장받고 살 수 있는 공감대를 얻어야죠. 갈수록커지는 사회적 배제와 고착화된 관념의 체제들이 국민의 여론에 의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처음에 무상급식 말로만 했을 땐 참멀게 느껴졌는데 10년만에, 그 짧은 시간에 현실이 됐어요. 인간과 인간의 소통으로. 우리사회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죠.


=물론 듣기좋은 이야기만 하지 마라,누가 안하고 싶냐, 그러면 앞으로 뭘 먹고 사냐, 나는 뭐 분배 안하고 싶냐... 분배 신경 너무 쓰다가 사회전체가 앞으로 못나간다 이런 분들도 계십니다. 들어보면 일리가 있기도 합니다.

=증세가 필요합니다.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말입니다. 스스로가 좀 더 여유있는 분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기여가 우리사회를 얼마만큼 형평성을 높이고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발적인 증세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강남에서 종부세 내고, 멋있는 부자들이 우리가 돈 쓸 것 쓰면서 사회적 책임다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어디 보니까 부자들이 모여 증세하라고 청원한 나라도 있던데.

=정부의 역할은 선의에만 기댈 수 없어요. 증세를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단에 운명을 걸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죠. 이런 문제에 대해 이런 보수적인 문제를 뚫을 정도로 지혜롭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증세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해요. 여론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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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나쁘고 감세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괜히 팽배하잖아요. 지금 증세를 한다면 부담자가 얼마나 느는지, 감세를 한다면 혜택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수 있나요?

=제가 작년에 소득세법 개정안을 냈어요. 최고구간에 최고세율이 현재 35%인데 이를 40%로 올리자는거예요. 그럼 실제 연소득 2억원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1조5천억원이 더 걷히는거죠. 증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1700만명 근로소득자의 0.4%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1조5천억원이 더 걷히는거죠. 그런데 감세를 한다고 할 때 8%에서 6%로 감세를한다고 할 때 1천만원 이상 연소득자들이 감세로 줄어드는 효과보다 상위 0.5% 분들에게 줄어드는 효과는 33배에 이릅니다.

=본인이 보는 인간 이정희는 어떻습니까. 97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신 뒤 죽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인권변호사로 살아오셨는데 그 또래 법조계로 치면 아이돌 생활을 하신거잖아요. 수다떨고 일상을 즐기는 이정희가 아니라 무대위에 주로 올려져 계신, 일상과는 떨어진 역할들을 하신거잖아요.

=그래도 저를 지탱해준 것은 아이들이에요. 다행히 저는 공동육아를 하면서 다른 부모님들과 함께 모여 아이들을 키웠어요. 10년만에 가족끼리만의 여행은 한번정도 갔는데 다른 가족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냈어요. 아이들이 6학년 4학년이에요. 정치에 입문하기 전 한달동안 아이들과 보낸 적이 있어요. 아침에 회관에 가서 헬스하고 집까지 아이들과 걸어오고 책도보고 아이들 기다리며 과자도 굽고... 그런 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 인생이 이렇게 살아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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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정평), 아들 준범, 승범군과 함께.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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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일상의 유혹에서는 벗어났죠. 국회에 오니까 변호사할 때랑 또달라요. 의뢰인과의 약속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한사람의 정치인이 어떤 삶을 살고 고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자신과 여러 사람의 삶 전체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이게 무한책임이로구나, 정말 잘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올해 저도 모르게 출마할 뻔 했습니다. 하하. 저도 연예인이 아니거나 알려지지 않았으면 익명성을 보장받을 때의 자유로움이 있었을 텐데 그건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부분이긴 하죠. 지금 딱 20대로 가시면 뭘 하고 싶으세요

=전 예전에 입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 둘 낳고 키우면서 바쁘게 지냈는데 조금만 바쁘지 않으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 혹시 나이차이 덜 나는 분과 연애해보고 싶다는 생각한건 아니시구요? (이의원은 남편과 11살 차이. 29세에 결혼)

=설마 제가 평생 연애를 한번만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혹시 절 보고 그러시는건 아닌가요? 하하. 자유롭다면 뭘 꼭 해보고 싶으세요?

=제가 국회의원 되기 전에 베토벤 교향곡 5번을 피아노로 편곡한 악보를 구해놓고 마스터하겠다고 했는데 손도 못댔어요.

=사법연수원 후에 인권변호사로 안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쪽으로 안갈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럼 언제부터 주변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제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유복한 가정은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지하방을 벗어났는데 그전엔 여름에 비가오면 늘 집안으로 물이 들어와서 요가 흥건히 젖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 셋집을 2층으로 올라갔더니 집 안에 화장실이 있고 너무 행복하더라구요. 사당동 산동네에 살면서 오폐수가 모여있는 웅덩이 근처에서 항상 놀았는데 빠져죽을 뻔한 기억도 있고. 연탄가스도 맡아봤고. 그런건 우리 시대에 많이 경험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후엔 다행히 부모님의 일이 안정되면서 생활도 안정됐어요. 어쨌든 저랑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완전히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건 무슨 우연이고 왜 그런지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평탄한 것보다는 그런 환경의 굴곡에서 오는 경험이 남달랐지요. 그러면서 자연히 주변을 돌아보고 남을 생각해보는 성향이 어릴때부터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런 환경을 경험하게 하신 부모님께 감사드리죠.

=개인적인 성격은 어떠세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민감해요. 상처도 많이 받고.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마음이 힘든 것은 힘들어요.

=그래도 보좌진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국회의원 1위라는 영광스러운 설문의 주인공도 되셨는데요. 기분 좋으시죠


=그런 결과가 나온 건 우리 보좌관들 입이무거워서에요. ㅎㅎ. 굉장한 격무죠. 워낙 민주노동당 해야할 일이 많고 절박한 일이 많아요. 사명감 갖고 일하는 분들인데 . 국감 하면서 지난해 우리 보좌관은 3주간 집에 못들어갔어요. 힘들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장점을 갖고 계시고 정말 마음이 맑고 깨끗한 분들이세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함께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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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순신 장군 놀이를 하면 왜놈 역할을 할 아이가 없었다. 홍길동을 해도 다 활빈당원만 하려 하고. ‘나쁜 놈’을 하지 않으려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비단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아마 이 의원도 어린 시절 잔다르크 놀이를 하고 놀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시절의 이순신, 홍길동은 자꾸 안타깝게 변해간다. 그렇지만 이 의원은 그 시절의 잔다르크로 계속 남아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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