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연기라는 예술의 기초공정 ‘배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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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연기라는 예술의 기초공정 ‘배우학교’

“스스로 믿어졌니?” “난 믿어지지 않았어.” tvN <배우학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다. 나의 표현을 상대에게 믿게 한다는 것. 관중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연기의 본질은 믿음인가? 대체 어떻게 하면 믿음이란 게 생기는 거지?

종종 배우라는 직업이 기묘한 자리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물속에서 헤엄쳐야 한다는 점(혹은 지도를 봐도 못 본 척해야 한다). 순수해야 한다는 것. 무기를 장착하되 그것에 익숙해지면 안된다는 것. 창작자와 실연자(實演者)의 사이 어디쯤에 있는, 교묘한 예술 영역.

배우는 다름아닌 자신의 몸을 이용해 목적지에 다다라야 하므로, 100명의 배우가 있다면 100가지 연기론이 존재할 수 있다. 연기론이 작가론이나 연출론에 비해 드문 건 그래서일 것이다.

<배우학교>는 배우와 연기라는 예술을 탐구하는 희귀한 TV 프로그램이다. 본의 아니게 어떤 직업 영역을 탐구하게 되는 TV쇼들이 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가 요리의 본진을 얼핏 들춰 보여줄 때 열리는 평소와 다른 감각이 있다. <K팝스타>나 <히든싱어> 역시 ‘가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힌트를 준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인물의 몸과 말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해당 예술에 대한 입체적인 귀띔. <배우학교>는 예능이지만 본격적으로 ‘배우’에 대해 ‘배우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덕분에 대중은 TV예능을 보면서 연기라는 예술의 기초공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생소한 기회를 얻었다.


배우학교 tvN_경향DB


배우학교의 교사 박신양이 공들이는 수업은 학생들의 ‘자기 소개’다. 연기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애매하거나 틀에 갇힌 대답은 가차없이 질문의 공격을 받는다. 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죠? 왜 진심으로 안 느껴지죠? 필요 이상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박신양의 집요한 질문에 학생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깨닫는다.

연기란 ‘벌거벗는 행위’라는 사실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본 뒤에야, 그렇게 손에 쥔 자신을 이용해 표현하려는 바를 상대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로봇’ 장수원이 억압된 자아를 뚫고 서툴지만 감정을 표현해내려 애쓰는 장면은, 그가 ‘배우’로서 넘은 최초의 문턱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배우학교>가 말하는 배우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장악해야 하는 존재다. 장악하지 않으면 컨트롤할 수 없다. ‘믿음’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주 ‘액션 수업’에서 극한의 반복 체력 훈련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무술감독은 “배우는 몸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핵심가치들은 몸이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도구들을 몸에 장착하는 것이다. 도구에는 발성, 표정, 몸짓뿐 아니라 끝까지 가본 감정, 한계를 넘어 내적집중을 유지했던 기억, 타인의 심리 연구, 사물 관찰 등 온갖 것이 포함된다.

배우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찰’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우가 되는 과정이 불가능에 닿으려는 사람들의 헛된 노력과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는 것. 다름아닌 ‘나 자신 되기’라는 도달 불가능한 미션. 우리는 용기를 내야 가까스로 그것을 시도할 수 있지만, 이루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인간은 배우라는 대체물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배우학교를 떠난 학생들의 ‘실전’ 연기가 벌써 궁금하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