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프로듀스101’과 최종병기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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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프로듀스101’과 최종병기 소녀들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쇼 <프로듀스101>의 부제는 ‘국민 걸그룹 육성 프로젝트’다.

프로그램 소개에 따르면 이 ‘국민 걸그룹’이란 말에는 “월드클래스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K팝 아이돌”로서 “아시아를 대표할 차세대 초대형 걸그룹”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출연자들의 당락을 투표로 결정하는 시청자들에게는 ‘국민 프로듀서’라는 호칭이 부여되고, 걸그룹 명칭 응모전은 ‘대국민 공모’로 불린다. 허세처럼 보이나, 사실 이 반복되는 ‘국민’이란 단어야말로 이 쇼가 품고 있는 온갖 논란의 키워드 중 하나다.

프로그램의 소개대로 이 시대 아이돌의 위상은 ‘10대들의 우상’이 목표이던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내수시장의 축소와 함께 위기 타개책으로 시도한 해외 진출이 제2의 한류 열풍으로 이어지면서부터 아이돌은 어느덧 ‘국가대표’급 위상을 지니게 됐다. 주요 국가행사의 개·폐막식 엔딩 무대는 톱 아이돌그룹이 도맡고, 방한하는 해외스타들이라면 통과의례처럼 ‘K팝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돌의 소위 ‘국가적’ 위상은 어디까지나 ‘외화벌이의 역군’이라는 산업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달라진 위상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이 갈수록 혹독한 생존의 조건을 요구받는 이유다.

그들은 ‘K팝 전사’로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뛰어난 외모는 기본으로 장착해야 하고, 춤, 노래, 연기, 외국어, 개인기, 운동 등 전 분야에서 고른 능력을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완벽한 상품’으로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 ‘민간 외교관’으로서 손색없는 교양과 인성도 필수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프로듀스101’에 참여한 연습생들_경향DB


걸그룹의 생존 조건은 한층 까다롭다. 똑같은 ‘K팝 전사’면서도 여성성을 유지해야 하는 성별 권력관계가 어김없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가 ‘국민 걸그룹’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민 여동생’ ‘국민 요정’ ‘국민 엄마’등 소위 ‘국민’과 여성의 조합은 늘 남성 중심의 주류 질서에 거스르지 않는 안전한 이상형으로 귀결되곤 했다.

<프로듀스101>의 출연자들을 그토록 노골적인 성차별적 시선의 검증 무대에 올려놓는 것도 모두 ‘국민 걸그룹 육성 프로젝트’라는 미명하에 이뤄진다.

단적인 사례가 실력 외에 ‘미모와 어린 나이’의 강조다. 이 쇼는 대놓고 “외모도 실력”이라 말하고 출연자들 외모에 서열을 매기는 데 주저함이 없다. 외모 투표 우승자인 주결경이 자연스럽게 팀의 ‘센터’에 서고, 당당함이 돋보였던 전소연이 외모에 대한 ‘악플’에 시달리면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도 그러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러한 성차별적 시선에 의해 나이 역시 ‘실력’이 된다. 최고령자 황인선은 방영 내내 ‘이모’라는 캐릭터만 부각된 반면 15살의 전소미는 실수를 해도 ‘막내’라는 점을 배려받았다.

인성 테스트도 한층 엄격해진다.

출연자들은 모든 순간이 곧 인성 검증의 시간이다. “목숨 걸고 하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처럼 불타는 열의를 보여줘야 하면서도 굳이 ‘센터’에 서고자 하는 욕심을 비치면 인성이 나쁘다는 비난에 휩싸인다.

요컨대 <프로듀스101>은 철저하게 ‘국민 걸그룹’이라는 작위적 호칭에 맞게 빚어지는 상품 생산 과정과도 같다. ‘국민 걸그룹’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산업의 최종병기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김선영 |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