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tvN의 10년치 시상식 ‘tvN10어워즈’에 찬사가 쏟아졌다. “tvN답다” “할리우드 같다” “새롭다”는 말이 주를 이뤘다. 맞다. 참신하긴 했다. ‘노예상(노력하는 예능인)’ ‘로코킹&로코퀸상’ ‘메이드 인 tvN상’ 등 시상 부문은 새로웠고, 영상 디자인과 무대도 공들인 티가 났다. 코너와 형식을 다양화해 볼거리도 많았다. 그러나 ‘tvN10어워즈’가 눈에 띈 데는, 한국의 기존 시상식 문화가 워낙 척박했던 것의 영향이 가장 크다.
국내 방송사 시상식은 김빠진 지 오래다. 연예기자들 말고는 아무도 연말 시상식에 관심 없다. 귀띔받은 수상자만 참석해 기계적으로 박수치다 예정된 상을 받고 돌아간다. 옛날 같은 권위도 없다. 가족들이 모여앉아 꽃다발을 안은 채 눈물 흘리는 연기대상의 히로인을 지켜보고, 그 장면이 한동안 회자되는 연말의 풍경은 사라졌다. 연예대상 역시 수년째 같은 연예인 몇몇 중 누가 ‘대상’을 받느냐에 흥미가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tvN 10주년 어워즈 안내 이미지. ㅣtvN
더구나 최근엔 몇 년째 같은 논란이 반복돼 피로감마저 쌓여 있다. 스타 위주의 시상, 대량 공동수상과 나눠먹기, 그들만의 잔치. 이 때문에 중장년 배우들은 시상식에 나와서도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배우끼리도 그런데 하물며 스태프의 자리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마치 남의 잔치에 불청객으로 찾아온 듯하며, 수상소감을 길게 말하는 것은 거의 죄처럼 느껴진다.
영화상은 다른가. 지난해 기가 찬 코미디를 연출했던 대종상, 권위 없는 청룡상도 마찬가지 신세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시상식은 지켜보는 시청자에게나 참석한 관계자에게나 지루한 연례 소동일 뿐이다. 시상식이 재미와 의미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면, tvN이 이번 시상식에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쇼의 영역, 즉 재미다. ‘상’의 권위보다 ‘잔치’에 초점을 두고, 그 아래에 카펫처럼 10년의 발자취를 깔아놓았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지상파 재탕 채널”에서 벗어나 차세대 예능, 드라마 왕국으로 자리 잡은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시키는 영리한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허전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잘 만든 시상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상의 권위나 영악하게 세공된 쇼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매년 말도 탈도 많지만 아카데미는 언제나 영화의 각 분야에 평등하게 집중한다. 연기, 연출 등 주요 분야 외에도 편집, 각본, 사운드 등 각 시상 분야의 소개 영상과 대본은 각 분야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게끔 공들여 만든다. 시상식의 모든 요소들은, 이 행사가 잘나가는 영화배우나 스타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축제라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 이 점은 곧장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라는 것이 지금 보고 있는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내는 멋진 종합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 지상파 연말 시상식을 만드는 제작진들도 좀 새로운 생각을 할 때가 왔다. 권위를 가질 수 없다면,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애청하는 이들의 연말 파티로서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덧붙여, 수상자들은 수상소감 연습 좀 하고 오면 좋겠다. 어차피 시상식의 본질은 쇼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말이 많지 않나? tvN 시상식에 쏟아진 찬사를 보라. 시청자는 작은 재치에도 박수 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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