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소사이어티 게임’, 헬조선 최후의 생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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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소사이어티 게임’, 헬조선 최후의 생존게임

3년 전 MBC 군대 예능 <진짜 사나이>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른바 ‘날것’의 재미를 위해 더욱 혹독한 조건을 찾아가는 리얼 예능의 흐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당시 ‘한겨레21’에 실린 김완 기자의 리뷰에서는 “군대보다 더한 ‘리얼’을 말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감옥’뿐일 텐데, 예능이 ‘감옥’을 소재로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 말하며 이 쇼를 가혹한 리얼 예능의 ‘끝판왕’이라 평하기도 했다.

 

이 같은 리얼 예능의 흐름은 단순히 자극적 재미를 노리는 방송의 상업성 차원을 넘어선다. 이러한 예능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극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라는 목표는 현실에서 치열한 생존게임을 치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속성과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리얼 예능의 잔혹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의 환경이 척박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군대보다 더한 감옥’을 모티브로 한 리얼 예능까지 탄생했다. 지난주 방영을 시작한 tvN의 새로운 리얼 예능 <소사이어티 게임>은 근대 유럽의 원형감옥 패놉티콘에서 따온 세트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 쇼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상징하는 각기 다른 두 체제를 통해 리더의 자격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탐구한다는 설정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기존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두 집단의 대결 구도를 결합한 한층 극단적인 생존 게임일 뿐이다.

 

감옥을 연상케 하는 세트는 이 쇼의 극한 조건을 그대로 시각화한다. 참가자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 허락된 환경 속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동시에 외부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쇼는 공교롭게도 적자생존의 경쟁체제와 대외적 긴장이 극에 달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주소를 압축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현실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낸 부분은 두 집단 모두 체제와 상관없이 지배자 남성과 주변화된 여성의 젠더 권력구도를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성비부터 불균형하다. 다수자 남성이 동맹과 배신의 정치공작으로 권력 잡기에 몰두할 때, 수적 소수자 여성들은 한발 물러나 눈치를 살핀다.

 

단적인 사례가 양쪽 마을에 처음 입성한 남녀 출연자들의 대조적 태도다. 남성인 양상국과 올리버 장은 대놓고 권력욕을 표현하거나 “쓸모 없는 사람을 빼고 가야 한다”며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반면, 여성 출연자 황인선과 엠제이킴은 “평화주의자”로 자처하며 ‘위험한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먼저 표현한다. 첫 탈락자 선정에서도 여지없이 젠더 권력구도가 작용한다.

 

게임에 참여했지만 팀에 패배만 안겨주고 리더의 자질을 보여주지 못한 파로보다 애초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여성 윤태진이 더 큰 책임을 안고 탈락한 것이다.

 

<소사이어티 게임>이 은연중 드러낸 가장 잔혹한 현실의 속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적 체제를 표방하며 구성원들이 매일 직접 투표로 리더를 선출하는 사회이든, 다수의 반란 없이는 리더의 권력 교체가 불가능한 독재사회이든 그 사회가 오로지 ‘생존’만을 목표로 할 때 약자는 자연스럽게 최우선으로 배제된다.

 

삶의 조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가치관마저 전근대로 퇴행하고 있는 ‘헬조선’ 사회의 적나라한 속성을, 지금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능은 없다.

 

김선영 |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