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같은 작가 서숙향의 2014년작 <미스코리아>와 궤를 같이한다. 고졸 학력에 돈도 ‘빽’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반반한’ 얼굴과 몸뿐인 여성이 마초 엘리트 남성과 나아가 ‘마초적인’ 사회를 구원하는 이야기.
<질투의 화신>의 주인공 표나리(공효진)는 외환위기로 벼랑 끝에 서 있던 1990년대를 살아낸 <미스코리아> 오지영(이연희)의 2010년대 버전처럼 보인다. 삼류대학 출신의 표나리는 이제 시대착오적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아나운서를 꿈꾼다. 표나리는 쇼호스트를 거쳐 계약직 기상캐스터로 방송국에 입성한다.
<파스타>로 잘 알려진 작가 서숙향은 20대 입주 가사관리사를 그린 <로맨스타운> 이후 엘리베이터걸, 미스코리아, 기상캐스터, 아나운서 등 여성의 외모를 강조하거나 사회적으로 전통적 여성상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군의 여성들을 다뤄왔다. 서숙향은 이 같은 여성들의 솔직한 욕망을 그림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물론 여성주의 진영 내에서조차 감춰야 할 것으로 곡해되어온 ‘여성성’을 긍정하는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진영에도 속하기 힘든 미묘한 지점의 여성을 다루는 그의 드라마가 종종 ‘반여성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질투의 화신> 역시 직업으로서 기상캐스터를 비하한다거나,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남주인공의 ‘마초’ 근성이 불편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질투의 화신> 속 남성들은 애초 ‘마초 기자’로 설정되어 있는 주인공 이화신(조정석) 외에도 모두가 심각한 마초로 묘사된다. “계집애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화신이나 기상캐스터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피디를 비롯해, ‘젠틀맨’으로 설정된 고정원(고경표)조차 데이트 신청을 하면서 “드레스 코드는 짧고 타이트한 반바지에 배꼽티”라고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조연인 고등학생들(“언 놈이 니한테 담배 갈키줬노!”), 셰프 김락(“저 여자 관심 없습니다. 특히 나이든 여자는”), 보도국장(“시집을 보내든가 해야지”)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여성 인물들은 마초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애쓸 뿐 대항하지 않는다. 표나리는 “배꼽티 안 입고 왔네?”라는 정원에게 “이 시간에 배꼽티 입고 버스 타기가 좀 그래서요”라고 말하며 수줍어하지 “왜 내가 네가 입으란다고 배꼽티를 입느냐?”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의 짜장면을 비벼주고, 반말하는 남자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그러나 이런 묘사는 무비판적으로 전통적 성관념을 받아들인 결과라기보다, 현실을 최대한 드라마 안에 끌어들인 뒤 그것이 전복되는 경험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질투의 화신>은 견고한 남성 질서 안에서 바로 서려는 ‘여성적’인 여자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들은 여타 드라마의 여성들처럼 외모 경쟁을 벌이고 울고 질투하고 싸우지만, 그것은 약자들의 생존방식이나 애증의 수평적 연대로 긍정된다. 또한 질투와 시기, 타인을 돌보는 성향(‘오지랖’) 등 지워야 할 것으로 치부되었던 ‘여성성’은 오히려 드라마 속 남성들이 바꾸지 못했던 세계와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해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마초적인 사회’를 구원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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