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한끼줍쇼, 강호동이 이경규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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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한끼줍쇼, 강호동이 이경규를 만났을 때

강호동은 2012년 복귀 후 혹독한 나날을 보내왔다. 단 1년을 쉬었을 뿐인데, 예능 생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를 밀어냈다. 그가 맡은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조기 종영했고, 그나마 자존심을 세워주던 <우리 동네 예체능>마저 끝이 났다. 이로써 강호동의 지상파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JTBC <아는 형님>, 올리브TV <한식대첩>, 그리고 지난주 시작한 JTBC <한끼줍쇼>가 전부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저녁 한 끼를 얻어먹는 프로그램 <한끼줍쇼>는 강호동이 더 이상 ‘국민 MC’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한다. 그는 ‘전 국민 MC’다. 제작진은 그를 섭외한 이유에 대해 “(무작위로) 가정집의 벨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다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강호동의 쓰임새가 진행 능력, 개그 감각이 아니라, ‘국민들이 다 아는 얼굴’ 정도라는 말처럼 들려서다.

 

방송인 이경규, 강호동이 출연하는 JTBC ‘한끼줍쇼’ 포스터

 

강호동이 ‘올드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과잉 제스처를 일삼는 옛날 MC다. 가까운 예로 지난 tvN 시상식에서 그의 ‘옛날 감각’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신동엽이 수상자로 불렸을 때 그를 번쩍 들어안아 걸어나갔고, 수시로 볼을 부풀리는 귀여운 표정과 ‘후아’와 같은 철지난 감탄사를 남발했다. 

 

<한끼줍쇼>의 강호동은 우리가 알던 그 강호동이다. 다른 점은, 그의 옆에 선 것이 이경규라는 점이다. 이경규는 그를 연예계로 이끈, 예능계 ‘형님’이다. 지금까지 강호동은 그 자신이 언제나 큰형님이었다. 그는 후배들을 챙기고 진두지휘하는 야생 호랑이였으며, 그의 ‘파이팅’을 막을 자는 없었다. 제작진은 ‘형님’의 논리에 익숙한 이의 심폐소생을 위해서는 형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형님이 동시대 흐름을 잘 읽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인정받는 ‘갓경규’라면 더할 나위 없다.

 

정반대 성격의 둘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이경규는 목적을 향해 달리는 냉철한 실용주의자다. 반면 강호동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데 여념 없는 시끄럽고 성실한 ‘국민박애주의자’다. 이경규는 따진다. “넌 과다한 시민들과의 가식적인 대화가 너무 길어” “그 몹쓸 애교의 출처는 어디야?” 이경규의 계속되는 ‘지적’은 강호동의 ‘몹쓸 태도’를 본격적으로 프로그램 안에서 객관화하는 역할을 한다. 강호동의 파이팅을 부담스러워했던 시청자는 이제 이경규의 시선에 올라타 노이로제 없이 마음 놓고 강호동의 ‘몹쓸’ 행동을 바라볼 수 있다.

 

프로그램은 이 충돌과 객관화를 통해, 강호동의 새로운 길이 반드시 그의 낡은 정체성을 ‘버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늘 궁금했던 것은 강호동은 왜 그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자기검열을 하면서도, 유효가 다한 옛 방식을 버리기는커녕 적극적으로 고수하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끼줍쇼>를 볼수록 그 낡은 정체성이 노병 강호동이 오랫동안 발로 뛰며 쌓은 전부이며, 그 방식을 버리는 것은 ‘강호동’이란 캐릭터 자체를 버리는 일일 거라는, 의외의 이해에 도달한다. 프로그램은 그의 지난 시간과 그 결과로 빚어진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세련된 노익장 이경규를 통해 그의 과잉 에너지를 조절해 화학작용을 일으키려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옛날 MC’ 강호동 앞에 열린 가장 믿을 만한 길처럼 보인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