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굿와이프’와 ‘아내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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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굿와이프’와 ‘아내의 자격’

‘칸의 여왕’ 전도연의 안방극장 복귀작이자 국내 첫 미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으로 주목받은 tvN <굿와이프>가 지난 27일 최종회를 마쳤다. 마지막까지 관심을 모은 결말은 김혜경(전도연)이 이태준(유지태)과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부부생활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독자적 길을 가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혼으로 선을 그었다면, 속은 시원해도 또 하나의 진부한 한국식 ‘줌마렐라’ 결말로 남았을 것이다. 초반 호평에 비해 갈수록 원작의 진보성에 뒤진다는 평가을 받았지만,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제3의 길’을 택한 엔딩만으로 이 리메이크에 대한 점수는 조금 후해진다.

 

배우 전도연이 출연하는 tvN 드라마 '굿와이프'의 한 장면

 

적어도 결말만 보면, 초반 기획의도에 충실하고자 한 제작진의 고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총 156편에 달하는 원작을 16부작으로 각색하면서 국내판은 원작의 복잡한 서사를 혜경의 성장담으로 압축시켰다.

 

‘이태준의 아내’로 어쩔 수 없이 언론 앞에 선 모습으로 시작해, 전략적 동반자로서 회견장에 등장한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수미쌍관 결말은 혜경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혜경의 성장기는 각성한 주부가 자아를 찾아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탈출하는 데서 더 나간다. 그녀의 독립은 남편과의 결별을 떠나 한층 근본적 차원에서 진행된다. 제목처럼 ‘좋은 아내’가 상징하는 스테레오타입과의 싸움이다.

 

리프먼이 정의했듯 스테레오타입은 이미 특정한 문화 속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에 가깝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스테레오타입은 강한 억압기제로 작용한다.

 

혜경의 고통 역시 남편의 배신보다 스테레오타입의 내면화에서 온다.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로 살아볼까”하는 생각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이는 반대로 스테레오타입을 이용하여 권력을 재생산하는 남성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가령 태준은 ‘능력 있고 가정적인 남자’의 스테레오타입이 권력에 유리한 점을 이용하고 그를 위해 ‘좋은 아내’ 혜경을 필요로 한다.

 

혜경의 결말이 통쾌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남성들의 전략을 역이용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때문이다. 쇼윈도 부부로서 자신의 스테레오타입을 적극 전시하면서 진짜 욕망을 실현하는 모습은 명백하게 남성권력의 이미지정치를 되받아친 것이다.

 

문제는 스테레오타입과 싸우는 이야기 다른 한편에서 또 다른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한 각색의 한계다. 변호사로서 혜경의 능력이 ‘공감력’에 있다고 설명하는 점이나 혜경 자신이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반부터는 혜경을 사이에 둔 태준과 서중원(윤계상)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전형적인 삼각관계 여주인공의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기도 했다. 원작의 진보성과 한국적 각색의 균열인 셈이다.

 

사실 중년 기혼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의 정면 투쟁은 일찌감치 정성주 작가가 <아줌마>(MBC, 2000) <아내의 자격>(JTBC, 2012) 등을 통해 그려낸 바 있다.

 

특히 제목에서처럼 기혼여성의 억압적 의무와의 살벌한 전쟁을 그렸던 <아내의 자격>은 진정한 한국판 <굿와이프>다. 다만 원작의 힘을 빌려, 여주인공에게 <아내의 자격>이 보여주지 못한 ‘제3의 결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라도 <굿와이프>의 리메이크는 의의가 있다. 진화를 향한 걸음은 그렇게 여러 삶의 가능성에서 조금씩 축적되는 것이다.

 

김선영 |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