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미운 우리 새끼’의 이상한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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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미운 우리 새끼’의 이상한 모성

최근 몇 년간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방송가에서 ‘세대 간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청률에 기여할 뿐더러 공익성 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자주 선택되는 소재는 단연 ‘가족’. ‘엄마의 다시 쓰는 육아일기’라는 부제를 내건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는 가족 중에서도 전천후 치트키인 ‘엄마’를 내세운다. 엄마들이 모여 앉아 ‘평균 생후 509개월’의 ‘철부지’ 독신 아들(김건모, 김제동, 허지웅, 박수홍)의 일상을 관찰하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눈다는 구성이다. ‘엄마’라는 공감대와 출연자들의 확실하고 빠른 캐릭터 구축 덕인지, 지난주 정규 편성 첫 회 만에 금요 예능 1위 시청률을 기록했다.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독거남의 일상 관찰에 엄마 시선의 ‘토크’를 추가해 놓았다. 마치 동시간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전현무나 김광규를 지켜보는 그들의 어머니와 어머니 시청자들을 통째로 묶어 TV 안으로 끌어들인 모양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가수 김건모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 “<우리 아들 혼자 산다>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또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며 ‘내 자식의 하루가 궁금한 엄마의 마음’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지난해 방송된 JTBC <엄마가 보고 있다>와도 상당 부분 기획의도를 공유한다.

 

<엄마가 보고 있다>에서 놀라웠던 것은 ‘자식의 사생활을 CCTV처럼 훔쳐본다’는 형식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제작진의 태도였다. 프로그램은 “내 자식의 하루가 궁금한 어머니를 찾습니다”라는 변태적인 제목으로 사연 신청을 받고, 자식들의 정확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들의 생활을 몰래 관찰했다. 엄마-자식 관계는 그래도 괜찮은 것이며 ‘내 새끼 걱정’이라는 엄마의 마음이면 다 용서되었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모성은 비슷한 방식으로 이용된다. 세대별·성별 전통적인 역할상과 획일적 삶의 방식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모성의 이름으로 정당화, 미화한다.

 

엄마 출연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불완전한 아들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 즉 ‘결혼’에 있다. 이들에게 독신은 아직 무엇이 안된, 미완성의 비정상 상태이다. 거기다 음주, 클러빙, 결벽증 등을 마치 정상 범주에서 어긋난 삶의 양태인 것처럼 재단한다. 혀를 차고 인상을 찌푸리고 다른 엄마의 손을 잡으며 걱정한다. 제작진이 마련한 VCR은 엄마들의 놀라움을 유발하도록 구성되며, 프로그램은 애초 의도대로 그들의 이 같은 반응을 부각시키는 데 골몰한다.

 

‘엄마’라는 당의정으로 감싸인 프로그램은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연상 며느리는 싫다’, ‘처가살이는 절대 안된다’, ‘결혼하면 일 그만두겠다는 ○○○가 며느리감으로 좋다’는 등 뒤떨어진 여성관을 내보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이것을 ‘모성애 가득한 리얼 토크’라고 명명한다.

 

이 같은 태도는 모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다. 애초 40~50대인 장성한 아들에 대해 ‘육아 일기’를 다시 쓴다는 기획의도 자체가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못하는 왜곡된 모성상의 반영이다. 다 큰 자식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미숙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삶으로 그들을 ‘이끌려는’ 병적인 집착에 자꾸 ‘모성애’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타인의 삶의 방식을 제멋대로 평가하는 이런 태도는 실은 관찰 예능이 지배적인 한국 예능 전반에 깔려 있는 시선이기도 하다. <미운 우리 새끼>는 모성을 구실로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정당화할 뿐이다.

 

요컨대 <미운 우리 새끼>는 ‘모성’을 손쉬운 소재로 차용할 뿐, 젊은 세대까지 설득할 수 있는 진짜 ‘세대 간 소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 프로그램이 혹여 ‘세대 간 소통’에 기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작진의 의도 바깥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