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장기 프로젝트 ‘무한상사’ 2016년판이 드디어 다 공개됐다. 김은희 작가, 장항준 감독 등 스타 제작진과 배우 김혜수, 구니무라 준, 이제훈, 가수 지드래곤 등 화려한 카메오 군단으로 화제를 모은 기대작답게 안방극장 최대의 볼거리로 손색이 없었다. ‘무한상사 2016’은 의문의 ‘사원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싼 음모를 그린다. 이 과정에서 김은희 작가 대표작인 tvN <시그널>을 비롯해 tvN <미생>, 영화 <베테랑> <곡성> 등이 패러디됐다. 미국 직장인 시트콤 <더 오피스>의 소소한 패러디로 출발한 ‘무한상사’가 어느덧 한국 사회를 뒤흔든 문제작들의 흥행코드를 종횡무진하는 블록버스터로 성장한 것이다.
규모의 확장은 서사적 측면에서도 필연적이었다. 2011년 5월, 불합리한 직장문화를 풍자한 시트콤 ‘무한상사-야유회’ 편으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점차 깊어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으로 문제의식을 넓혀왔다. 가령 2012년 1월 ‘무한상사-새해인사’ 편에서는 회장님 말 한마디에 지하실, 옥상으로 옮겨 다니는 영업팀을 통해 2012년 언론노조 파업 계기가 된 MBC 경영진의 보복성 인사를 꼬집었다. 같은 해 9월 ‘무한상사-추석특집’ 편은 4년째 인턴인 길과 회장 장남 지드래곤의 대비를 통해 ‘수저론’ 대란을 앞서 보여준 바 있다.
2013년 ‘무한도전 8주년 특집 무한상사’에서는 더욱 강렬한 풍자를 선보였다. 만년과장에 머무르다 끝내 정리해고당한 정준하는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같은 업종에 진출한 대기업 무한상사와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편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한 KBS <직장의 신>과 더불어 그해 최대 화두였던 ‘갑의 횡포’를 잘 담아낸 서사로 남았다.
이러한 변천사 안에서 ‘무한상사 2016’이 재벌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 기업지배구조라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 모순을 비판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가 극에 달해 있다.
스릴러를 택한 ‘무한상사 2016’의 장르적 변신은 이처럼 일상이 곧 스릴러가 된 시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보내는 평균 노동시간 2113시간, 회사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직장인 73%, 스스로가 돈 버는 기계처럼 느껴진 적 있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한 직장인 53%,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은, 행복이었다”는 내레이션을 마친 유재석 부장이 곧바로 재벌권력에 쫓기는 추격전의 도입부는 그 자체로 직장인들의 삶에 대한 비유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한상사 2016’의 의의는 단지 극도로 악화된 생존조건에 대한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보여준 ‘무한상사’의 진정한 힘은 점점 가혹해지는 현실 안에서도 팀원들끼리 똘똘 뭉쳐 살아남는 데 있었다. 그들이 공동체와 연대를 중시하는 이타적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약자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이기 때문이다. 눈치 없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1순위였던 정 과장 이야기를 다룬 2013년판 ‘무한상사’에서도 그의 해고는 꿈으로 판명난다. 그들의 생존은 약자의 도태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한상사 2016’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무한도전> 전 멤버 정형돈의 등장신이다. ‘무한상사’에서 ‘진상’ 정 대리 역을 맡았던 그는 의식을 잃은 유 부장 앞에 환영처럼 나타나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겨워도 이겨내셔야 합니다. 빨리 회복하셔서 다 같이 웃으면서 꼭 다시 만나요”라고 속삭인다.
실제로 생존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공황장애가 악화돼 투병 중인 정형돈의 현실과 만나 더욱 의미심장해진 장면이다. 서로를 위한 약자들의 기도는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시그널>과도 이어지는 주제다. “그래도 아직 세상엔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는 유 부장의 마지막 대사처럼 ‘무한상사 2016’은 결국 스릴러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의 이야기였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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