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W-두 개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의 연쇄는 4화의 끝부분과 5화에 이어 등장한다. 웹툰 <W>의 주인공 강철(이종석)이 자신이 속한 세계가 조작된 허구의 세계임을 알아차리는 각성의 순간, 그를 둘러싼 세계는 돌연 멈춰버린다. 강철은 ‘모든 것을 알아버린 죄로 받은 일종의 형벌’이라며 주저앉지만 이내 눈앞에 바깥 세계로 향하는 포털이 열린다. 그는 결연히 그 문을 통과해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온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진짜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그대로 그려진 인기 만화 <W>를 읽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창조주인 웹툰 작가 오성무(김의성)를 찾아간다.
스스로 자아를 획득해 프레임을 찢고 나온 캐릭터와 캐릭터에 잡아먹힐까 두려워하는 작가의 대결. <W>는 여기에 작가의 딸인 오연주(한효주)를 개입시킨다. 오연주는 만화 캐릭터인 강철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의지에 맞서 만화 속 세계를 드나들며 그를 살려내려 애쓴다. 여주인공인 그녀는 물론 강철과 로맨스로 맺어지지만, 단지 꿈에 그리던 픽션 속 주인공과 만나는 판타지 프린세스만은 아니다. 오연주는 픽션의 세 주체 ‘작가-캐릭터-독자’ 중 ‘독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드라마는 이 세 주체가 길항하는 픽션의 내부적 특성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 같은 구도는 독자의 힘이 결말을 좌우하며 작가와 갈등을 일으키는 최근 웹툰을 둘러싼 창작 환경을 직접적으로 풍자할 뿐 아니라, 나아가 픽션 창작과 그 전개과정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환기한다.
픽션과 현실 사이 ‘무너진 차원의 틈’에서 서사 창작을 둘러싼 질문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캐릭터는 전적으로 작가의 창조물인가? 상황만 주어지면 캐릭터는 살아 움직이게 마련인가? 캐릭터의 자아는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나? 작가는 캐릭터의 내면에 얼마나 침투할 수 있나? 독자는 이야기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나? 이야기가 끝나면 그 세계는 어디로 가나(정지하나, 사라지나, 계속되나)? 사람들은 왜 어떤 이야기의 결말에 항의하거나 화를 낼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하나. 이야기란 대체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질문이 단지 드라마가 표면적으로 주지하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라 이중, 삼중의 겹겹의 세계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웹툰 세계와 드라마 속 현실 세계에 더해, <W>라는 드라마 자체의 세계, <W>의 작가 송재정의 세계, 우리가 사는 진짜 현실 세계 등 서로 다른 층위의 세계들이 서로를 가리키고 부딪히고 영향을 주며 두꺼운 텍스트를 구성한다.
물론 <W>의 관심이 오로지 픽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W>의 미덕은 오히려 이러한 메타픽션(픽션이라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창작방식)의 요소를 장르적 쾌감에 복무하도록 잘 녹여냈다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각자의 세계를 넘어서려는 인물들의 간절한 분투가 마음을 건드린다. 오연주가 알지 못하는 세계 속 타인의 ‘해피엔딩’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강철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불가해함을 풀기 위해 용기 내어 미지의 세계로 건너가는 장면(“내가 이리 온 겁니다. 오연주씨의 세계로”), 그리고 ‘조작된 인생’을 처음으로 바깥에서 들여다보게 되는 강철의 각성 서사 등은 우리에게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역시 자신이라는 한계에 갇힌 채, 만들어진 시스템에 의해 조작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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