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은 늘 한국드라마 속 최고 인기 직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법정드라마는 한국에서 가장 척박한 장르에 속한다.
그동안 법조인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들이 대개 ‘법원에서 연애하는 판타지’에 가까웠던 탓이다.
전문직 드라마에 좀 더 강한 전문성을 요구하게 된 지금에도 판타지적 속성은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로맨스 대신 정의 구현을 외친다는 점이다. ‘법원 연애물’은 가고 ‘법조 영웅물’의 시대가 왔다.
KBS 수목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이러한 법조 영웅물의 최신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기소율 백프로”라는 전설적 기록의 소유자 조들호(박신양) 검사는 검찰 윗선의 “메이저 스폰서”인 재벌회장을 횡령죄로 기소했다가 오히려 뇌물수수 혐의로 전과자가 된다. 출소 뒤 방황하던 조들호가 과거 자신의 과오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노숙자를 만나면서 정의로운 변호사로 각성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KBS2 새 월화극 ‘동네변호사 조들호’ 포스터. 사진_ KBS
주인공 조들호는 말하자면 법조계 슈퍼히어로의 완성형 같은 인물이다. “서초동 꼴통” 검사에서 다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호사로 거듭나는 그의 모습에는, 영화 <공공의 적2>에서부터 시작된 “꼴통 검사” 히어로물과 영화 <변호인>,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부쩍 두드러진 소시민 변호사 영웅물의 특징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
먼저 “꼴통 검사” 히어로물에서는 부패한 권력과의 통쾌한 싸움 못지않게 법의 엄격한 권위주의를 비웃는 이단아적 인물들의 변칙적 매력이 빛난다.
이 분야 주인공들은 <공공의 적2> ‘원조 꼴통’ 강철중(설경구)을 지나 영화 <검사외전>에서 가짜 검사를 ‘아바타’로 내세우는 변재욱(황정민), KBS <복면검사>의 가면히어로 하대철(주상욱)처럼 점점 ‘이단’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파격’은 조들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조들호의 몸개그와 재판 참관인들의 웃음소리는 이미 거대재벌의 ‘휠체어 열연’ 무대로 전락한 법정의 ‘쇼’적인 성격을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소시민 변호사 영웅물로서의 특징도 흥미롭다. 이 계열에 속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흙수저’ 출신으로 같은 서민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이들의 의뢰인은 최근으로 올수록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특징을 보인다.
가령 <변호인>의 송우석(송강호)은 대학생에서 노동자 변호로 옮겨가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국선변호사 장혜성(이보영)은 빈곤한 독거노인, 일탈 청소년 등의 소외계층을 주로 변호한다. 얼마 전 종영된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 서진우(유승호) 역시 ‘변두리 로펌’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힘없는 이들을 대변했다.
제목부터 ‘동네변호사’를 내세운 조들호는 한층 어두운 사회의 사각지대로 내려간다. 보육원 생활, 노숙자 생활을 모두 거친 그는 변호사로서의 첫 사건도 노숙자 변론으로 시작한다. 첫 의뢰인 변지식(김기천)은 명예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가게주인에게 일방적으로 쫓겨난 뒤 가족이 해체되고 노숙자로 떠돌게 된 인물이다. 우리 시대의 법조 영웅물은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생계와 존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제도 현실의 부조리 위에서 탄생했다. 전개는 다소 비현실적이어도, 그 이면만큼은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한국형 판타지를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보여주고 있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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