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이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다. 초창기만 해도 이 프로그램의 ‘새로움’이라면 모를까 ‘지속성’을 예상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단지 인터넷 방송의 1인 BJ 포맷을 TV 안으로 끌어들인 신선한 사례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리텔>은 뜻밖에 문화적 주도권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았다. 지상파 TV라는 한계가 역설적으로 찾아낸 ‘제3의 언어’가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마리텔>에는 인터넷 생방송, 1인 미디어, 채팅창과의 소통, 최신 인터넷 ‘드립’과 개그 요소 등 각종 인터넷 서브컬처가 녹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이 취하는 태도는 지극히 지상파의 것이다.
제작진은 <마리텔>이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지상파 방송”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넷 생방송도 중요하지만 본방송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젊은층이 즐길 만한 코드를 넣을 때도, 다들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박진경 PD ‘오센’ 인터뷰) 5개 채널 출연자들은 특정 시청층이 최대한 소외되지 않도록 세대·성별·분야 등을 고려해 조합되고, 인터넷 문화는 패러디의 대상인 원작을 몰라도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된다.
이러한 태도가 실제로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젊은층 외의 시청자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는지는 의문이지만(여전히 중장년층은 <마리텔>을 어려워한다), 지상파라는 한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형식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5개 채널이 90분 동안 진행하는 총 450분짜리 인터넷 생방송의 60분짜리 ‘편집본’이라는 형식, 콘텐츠와 시청자 간 공백을 메우는 가장 TV적인 요소인 자막·CG·편집 등 ‘가공’을 통해 인터넷 방송의 느낌을 살리려는, 즉 TV로 인터넷을 구현하려는 시도. 거기에 가져온, 악플은 거세되고 창조성과 소통성만 남은 일종의 ‘순한 맛’ 인터넷 댓글 문화, 다양한 분야의 ‘공영방송적’ 콘텐츠와 동시에 지상파의 금기를 대놓고 비웃는 개그 코드. 이것들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시청자와 누리꾼을 두루 만족시키는, 과거에 없던 지대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지난해 말 방송언어 관련 조항 위반을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 절차에 들어가자, ‘약빤 방송’은 ‘약을 빻아서 드신 방송’, ‘꿀잼각’은 ‘꿀 같은 재미가 예약된 각도’와 같은 식으로 인터넷 용어를 풀어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마리텔>이라는 형식 안에서 통용되는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말하자면 <마리텔>은 단순히 인터넷 형식을 차용한 ‘인터넷과 지상파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그 둘이 융합에서 우연찮게 발생한 새 언어처럼 보인다. 2000년대 중후반 인터넷 문화를 체화한 몸이 지상파 TV라는 오래된 보급형 뇌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멀티플랫폼 시대, 조롱의 대상이 된 지상파 TV가 여전히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면, <마리텔>은 하나의 전망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지상파는 다종다양한 사람과 문화와 매체의 특성이 서로 만나는 통속적인 교점으로 기능한다. <마리텔>은 분화된 각자의 채널을 지상파적으로 번역해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함으로써, 보수적인 지상파가 원래의 역할과 혁신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하나의 포맷명이 돼버린 ‘마이리틀텔레비전’이라는 형식은, 육아·쿡방·관찰예능 일색의 지상파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내용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열고 있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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