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본분금메달> <머슬퀸 프로젝트> 등 성상품화 논란 프로그램으로 여성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던 KBS가 오랜만에 새로운 여성예능 프로그램으로 호평받고 있다. 제목부터 야심찬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그 주인공이다.
출연자들의 꿈 도전기를 리얼하게 담아낸 이 방송은 김숙, 라미란, 홍진경, 제시 등 이른바 ‘세고 개성적인 언니’ 캐릭터로 주목받은 이들을 총집합시킨 캐스팅과 파일럿도 거치지 않은 과감한 정규 편성으로 KBS의 남다른 지원을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KBS는 여성 집단 버라이어티의 시초격인 <여걸파이브>를 시작으로 꾸준히 여성예능을 선보이며 이 분야의 계보를 만들어왔다.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여성 버라이어티로는 KBS <하이파이브> 이후 지상파에서 8년 만에 신설된 정규 프로그램이라지만, 좀 더 범위를 넓히면 그 사이에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나 <맘마미아>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비록 여성을 엄마, 할머니 등의 범주로 한정시켜 놓은 점이나 포맷의 진부함 같은 요인 때문에 길게 가지는 못했어도 지속적인 편성을 시도해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오랜만에 등장한 여성예능이 단순히 현재의 예능계 남초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더 오래된 여성적 전통 위에서 탄생했다는 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당장 김숙, 홍진경 같은 예능인 멤버들은 바로 그 전통 안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제작발표회에서 라미란, 티파니, 김숙, 제시, 민효린, 홍진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_경향DB
가령 김숙은 JTBC <최고의 사랑> 가모장 캐릭터로 주목받기 전부터 MBC every1 <무한걸스> 같은 여성 리얼버라이어티에서 특유의 개성을 쌓아왔다. 홍진경 역시 SBS 여성투톱예능 <영자의 전성시대>를 통해 고유의 정형화되지 않은 매력과 실력을 갈고닦으며 10대의 나이에 이영자와 함께 여성예능인 전성기를 이끌 수 있었다.
남성 중심적 예능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도한 여성성 아니면 무성성을 택해야 하는 여성예능인의 제한적 조건 안에서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여성예능의 전통은 김숙, 홍진경처럼 다양한 개성과 잠재력을 지닌 여성예능인들이 그들의 매력과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첫 번째 도전자 김숙의 꿈이 ‘대형버스 운전과 관광투어’라는 점은 꽤 흥미롭다. 관광버스야말로 영화 <마더>의 인상적인 엔딩신에서 보여주듯, 한국 사회에서 제일 억압받는 집단인 ‘아줌마’들의 전통적 유희 공간 아닌가. 운전 또한 여성들이 소위 ‘김여사’라는 가상 캐릭터로 공격당하는 대표적 분야다. 김숙이 따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여성이 대형관광버스를 모는 모습 자체가 이미 도전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하긴 김숙의 별명 ‘퓨리오숙’의 원조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페미니스트 전사 퓨리오사도 최강의 전투병기 ‘워리그’를 몬다. 공교롭게도 홍진경 역시 <영자의 전성시대> 버스 안에서 폄하된 여성노동의 대표격인 버스안내양에 강력한 존재감을 부여한 바 있다.
그리하여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여성판 <남자의 자격>’으로, 김숙 버스를 그들의 중장비면허 도전 복사판으로 폄하하는 시선을 향해 말하고 싶다. 여성들의 꿈은 그보다 훨씬 유서가 깊다고. 여성은, 여성예능인은 늘 강했다. 단지 그 힘을 발휘할 무대가 더 많이 필요한 것뿐이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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