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 기자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이탈리아 모디카에서 열린 시칠리아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무용수는 콩쿠르 참가자가 아니었다.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현웅(30·사진)이었다. 그는 참가자가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후배인 심현희의 파트너 자격으로 콩쿠르에서 춤을 췄다.
김현웅에 대한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첫날 공연부터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은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환호했다. 대체 그가 누구인지를 묻는 관계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인을 요청하는 관객들로 혼잡을 빚을 정도였다.
콩쿠르 조직위원장은 “원한다면 이탈리아의 어떤 발레 컴퍼니라도 다 소개하고 싶다”고 했고, 심사위원인 불가리아 소피아 발레 컴퍼니 예술감독은 “유럽에서 활동한다면 불가리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게스트 주역으로 기용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량과 인기 면에서 한국 발레리노의 역사를 새로 쓴 최고의 스타였기 때문이다.
4개월 전의 ‘악몽’이 없었다면, 여느 때처럼 국립발레단에서 동료 무용수들과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어야 할 그였다.
그는 지난 3월25일 술자리에서 국립발레단의 또 다른 주역 무용수인 후배 이동훈(25)에게 시비 끝에 폭력을 휘두른 게 문제가 돼 발레단을 사직했다. 한때의 실수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춤을 완전히 접어야 할지 모르는 인생 최대의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자기부정 속에서 그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침잠했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김현웅의 지도교수였던 한예종 김선희 교수다. 이번 시칠리아 무용 콩쿠르에 김현웅이 동행한 것도 김 교수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행여 그가 춤에 대한 열정은 물론 감각까지 상실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다행히 김현웅은 콩쿠르에서 춤을 추고 열광적인 반응을 접하며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춤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했을 터이다. 심사위원단은 김현웅을 위해 예정에 없던 베스트 파드되 상까지 만들어 수여했다. 그가 파트너가 돼준 심현희는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어떤 이유로든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하지만 이동훈과 이미 화해까지 한 마당에, 한국을 대표할 만한 걸출한 발레리노를 잃어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그는 누구보다 국립발레단을 사랑했다. 해외발레단의 러브콜까지 거절하며 발레단에 남아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자무용수 층이 얇은 데다가, 춤 좀 춘다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의 유명 직업무용단으로 나가는 현실에서, 김현웅의 존재감은 클 수밖에 없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자숙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외로움, 자괴감, 참회의 시간들을 춤으로 승화시켜 무대를 가르는 김현웅이 보고 싶은 건 비단 기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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