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듣다] 커트 코베인의 아픔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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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을 듣다] 커트 코베인의 아픔 들리는 듯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ㆍ너바나 20주년

혹자는 말합니다. “예전보다는 풍요로운 세상이 아니겠느냐”고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미국 시애틀에서 자란 한 청년의 음악은 대체로 음산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쉴 새 없이 뒤섞입니다. 이 청년은 바로 1990년대 록의 흐름을 삽시간에 바꿔버린 밴드 ‘너바나’(NIRVANA·열반)의 커트 코베인입니다.

너바나가 출현하기에 앞서 1980년대 음악계는 상업적인 팝이 크게 번성했습니다. 메탈 쪽도 저항보다는 기교와 화려한 연주를 추구하던 LA메탈이 득세했지요.

고교를 중퇴한 뒤 불우한 나날을 보내던 청년 커트 코베인이 밴드를 만들고 있던 당시 미국의 외양도 똑같이 화려했습니다. 레이건, 부시 두 대통령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목청 높여 외칠 때였으니까요. 이 두 대통령은 부자들의 소득세율을 크게 낮춘, 미국 세법사(史)의 저명한 인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변화와 음악적 변혁은 서로 유기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너바나로 말미암아 음악계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과,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순간이 비슷하게 겹칩니다. 그저 언더밴드였던 너바나는 1991년 2집 <네버 마인드>로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를 빌보드 1위에서 끌어내리며 팝의 질주를 저지했고, LA메탈을 멸종 직전까지 몰아버립니다.

사람들은 너바나를 ‘얼터너티브(대안) 록’의 시대를 연 주역이라 부릅니다. 너바나는 과거 영국의 한 밴드가 영국 여왕을 비난하던 그 ‘기개’에서 유래한 펑크록과 닿아 있었고, 바깥으로의 화려함을 추구하던 1980년대 메탈의 반대편에서 몇 가지 주법으로 음악의 기본을 야무지게 노래했습니다. 외양적 풍요의 시대에서 밀려났던 ‘펑크 정신’은 부활합니다.

전설의 너바나 2집 <네버 마인드>가 나온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최근 이를 기념해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된 앨범이 출시됐습니다. 조금은 깨끗해진 음질로 다시 듣게 된 <네버 마인드>는 여전히 명작입니다. ‘섬싱 인 더 웨이’로부터는 10대 시절 집을 나와 아무 곳에서나 잠을 청했던 커트 코베인의 고달픔이 직접적으로 전해집니다. 커트 코베인은 1994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해줄 젊은, 또 하나의 너바나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