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시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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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노래는 시여야 합니다

이영훈 작곡가를 아실 겁니다. 명작곡가였지요.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광화문 연가’ ‘이별이야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붉은 노을’ 등이 바로 그가 빚었던 노래입니다. 안타깝게도 작곡가는 2008년 2월 숨을 거두고 맙니다. 병마를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이문세가 6월1일 국내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열 수 있게 된 것도 이영훈 작곡가의 덕이 컸다 할 것입니다. 2007년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이영훈씨와 따스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제게 불쑥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작곡가 이영훈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노래는 너무 쉽게 쓰여지는 것 같아….”


몰랐던 일이지만 그의 노래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합니다. 노래는 반드시 ‘시(詩)’여야 할 것!


‘그대 떠난 여기 노을 진 산마루턱엔/ 아직도 그대 향기가 남아서 이렇게 서 있소/ 나를 두고 가면 얼마나 멀리 가려고/ 그렇게 가고 싶어서 나를 졸랐나’(‘휘파람’)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시를 위한 시’)


‘노을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소녀’)


이영훈씨는 노랫말 그 어느 하나도 가볍게 써본 적인 없다는 말도 했었지요.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고요. 곡 하나 하나 내놓을 때마다, 살 점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그의 악보집에 ‘작곡(作曲)’, 그리고 ‘작시(作詩)’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곡 이영훈’ ‘시 이영훈’ 이런 식이지요.


‘유행가 가사는 뻔하다, 통속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폄하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명작 상당수가 통속적 사랑을 바탕으로 쓰여집니다. 푸치니 오페라, 세익스피어 희곡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그는 이미 대장암 3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누차 만류하였지만, 기어코 앉은 자리에서 담배 반 갑을 피워버리던 고집쟁이였지요. 그리고는 몇개월 뒤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타박을 해도 “허허”하고 웃던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조용필의 노래를 주로 썼던 작사가 양인자씨 작품도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노래 대다수는 대학 시절 쓴 시를 토대로 탄생합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라고 흘러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원래는 시였습니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중략)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그 겨울의 찻집’) 또한 시였고요.


‘그 겨울의 찻집’에 등장하는 찻집은 경복궁 안에 있는 ‘다원’이라는 곳입니다. 양씨가 그곳에 앉아 쓴 게 시가 되었습니다. ‘다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양씨 역시 노랫말은 시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남인수씨 이난영씨 등이 부르던 노래를 두고 양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말 유장한 시예요. 정말 근사한 시가 많았지요.”


요즘 가요계에선 이렇다 할 ‘작사가’도 없습니다. 시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사에 봄꽃이나 실바람을 담아내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오죽 봄노래가 없었으면 버스커버스커 노래가 1년이 지나 다시 인기를 얻겠습니까? 요즘 가사는 ‘시’가 아니라 사실은 ‘돈’입니다. 작곡가들은 이제 작사가를 애써 찾지도 않습니다. 깊이 있는 가사를 만나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정동길에 놓인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에 봄꽃 하나 두고 와야 겠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 한 개비도 함께 두어야겠습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