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인터넷을 하다가 ‘맞아! 그땐 그랬어! 추억의 CD 플레이어’란 제목의 블로그 게시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블로거는 책생을 뒤져 나온 ‘CD 플레이어’ 사진을 찍어 올린 뒤 이런 소회를 붙였습니다.
“추억에 잠겼다. 맞아, 진짜 이렇게 큰 걸 들고 다닐 때가 있었어….”
CD 플레이어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저만 그런가요? CD 플레이어를 사는 사람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더 이상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이쯤 되면 번쩍이는 ‘워크맨’을 들고 기뻐했던 것도, 그보다 앞서 ‘전축 바늘’을 사러 시장통을 다녔던 일도 아예 옛 일이라 부르는 게 맞을 듯합니다.
음악 재생 기기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136년 전인 1877년 시작됩니다. 에디슨 이전에는 우리가 듣는 음악은 사람이 직접 내는 ‘라이브’뿐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녹음해 들려준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십년감수했네”라는 말, 바로 구한말 고종이 처음 유성기(留聲機)를 접한 뒤 있었던 일화에서 유래했답니다. 축음기의 개발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로 비춰졌을 겁니다.
아무튼 커다란 나팔이 달린 ‘포노그라프’, 바로 유성기가 당시 재생기였습니다.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트(plate)’, 그러니까 ‘음반’은 처음 원통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통 모양에 홈을 새긴 뒤 이 위를 바늘이 긁고 지나가면서 음을 살려내는 방식이었죠.
원통 모양은 1887년 에밀 베를리너로 인해 납작한 접시 모양으로 변모합니다. 당시 음반은 훗날 LP와 구분하기 위해 SP(Standard Playing)로 따로 불러집니다. 앞에 한 곡, 뒤에 한 곡, 총 2곡을 담을 수 있었지요. 쉽게 ‘미니 LP’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SP 수명은 60여년을 넘어갑니다.
한참 뒤인 1948년이 되어서야 한쪽에 36분 가량 소리를 낼 수 있는 LP(Long Playing)가 세상에 나옵니다. LP, 이제부터는 기성세대들에게 친숙한 ‘플레이트’가 됩니다. 태엽으로 움직이던 유성기가 전자로 움직이는 전축 정도로 약간 구동 방식을 바꾸는 것도 이 즈음입니다. LP는 이후로 1970년대까지 30년간 변함없는 지위를 유지합니다.
그 뒤로는 정말 쏜살같습니다. 1980년대 카세트플레이어와 카세트(Cassette)가 혁신을 일으키더니 1990년대 중반 들어 CD 플레이어와 CD(Compact Disk)가 왕좌를 뺐습니다.
속도감이 붙은 음악 매체는 2010년대 들어 급기야 ‘무형’ ‘무매체’ 시대로 치닫습니다. 음(音)을 담는 쟁반(盤)이라 해서 이름 지어진 ‘음반’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 투명 물건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음악 파일로 알고 있는 ‘MP3(엠피쓰리)’는 사실 압축 기술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아이로니컬합니다. 무형의 시대를 이끈 ‘MP3’의 아이디어는 꽤 기발하긴 했습니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영역대 소리, 그걸 놓아둘 필요가 없다고 여겨 잘라내고 압축해버리자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었지요. MP3 파일을 듣게 해주던 MP3 플레이어 역시 지금은 사라지는 추세지요.
복잡하지만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음악 재생기’는 유성기-전축-카셋트-CD 플레이어-MP3 플레이어 순으로, ‘음반’은 원통형-SP-LP-카세트테이프-CD-MP3로 흘러왔습니다.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편리성은 더 늘었습니다. 인간이 듣지 못 한다는 거추장한 소리도 싹뚝 잘라 내어버릴 정도니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CD 플레이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합니다. 곧 초등학생이 될 유치원생들은 조금 있다가 ‘MP3 플레이어’가 어떤 물건인지 모른다고 답하겠지요. 지금의 중학생들이 ‘카세트테이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듯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카세트 플레이어,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를 써본 지 저 또한 오래 되었습니다. 버리기는 뭐해 쌓아두기만 했는데, 이젠 정말 이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먼지 쌓인 제품들을 바라보니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도 겸연쩍긴 합니다. 그저 세월에 따랐을 뿐이라 말하려 하지만, 그게 결코 마음 가벼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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