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박범신씨와 시인 박진성씨 등의 실명이 SNS에 공개적으로 언급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전직 출판 편집자는 박범신씨가 출판사 편집자, 여성팬, 방송 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성적 농담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박범신씨는 어떤 여성에게 “약병아리다. 먹지도 못하겠다”고 했고, 영화 <은교>의 여배우에게 ‘섹스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박진성 시인의 경우 시를 배우려는 여성들에게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색기가 도는 얼굴” 등의 발언을 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자살하겠다”는 글을 남긴 뒤 걱정이 되어 찾아온 여성을 성폭력했다는 글까지 이어졌다. 박범신씨는 몇차례 수정·삭제를 거친 사과글을 남겼고, 박진성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글과 함께 작품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소설가 박범신. 강윤중 기자
하지만 파문이 쉬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사태는 김현 시인이 한 문예지에 여성혐오와 성차별 발언이 난무하는 문단을 신랄하게 고발한 이후 제기됐다. 터질게 터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공직사회는 물론 일반 직장까지도 뼈를 깎는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성폭력 문제에 그나마 거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여전히 돌출행동이 불거지지만, 성문화가 제대로 정착되는 쪽으로 가는 흐름은 분명하다. 그런데 작가 개인이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단은 어떤 곳보다 폐쇄적이다. 어느 문인의 언급처럼 자기만의 세계를 창작하는 문학인은 스스로를 현실의 권력까지 초월하는 ‘초자아’로 여기기 십상이다. 작가와 편집자, 작가와 독자, 작가와 습작생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갑과 을’의 관계가 된다. 이번에 박범신씨 사례를 거론한 여성은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폭로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박진성 시인을 고발한 여성은 등단을 꿈꾸는 습작생이었다고 한다.
문단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때가 아니다. 성폭력 해시태그(인터넷 게시물에 관련 정보를 #기호로 묶는 기능) 운동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어제는 유명 큐레이터 함영준씨도 사과문을 올렸다. 암암리에 묵인됐던 성폭력의 사례가 문화계 전반에서 고발되고 있다. 예술 작품은 독자의 심금을 움직이고, 때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만큼 영향력이 지대하다. 그 무게만큼이나 언행도 책임있게 가려야 한다. 문화인이라고 해서 일탈행동을 허용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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