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김영란법과 공짜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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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김영란법과 공짜티켓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9월28일부터 시행되면서 한국 사회가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평소 같으면 화환으로 꽃밭이 될 법했던 어느 현직 검사 결혼식장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화환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각종 로비와 접대로 만원을 이루었던 골프장이 평소 절반도 안되는 손님들로 한산했다.

 

김영란법이 야기한 사회적 파장은 문화예술계에도 적지 않다. 당장 공연예술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오랜 관행대로 공연을 후원한 기업과 단체, 주변의 지인들에게 제공된 초대티켓도 점차적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공연 초대권도 선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란법에 의해 5만원 이하의 공연에 대해서는 초대티켓 제공이 가능하지만, 초대권이 기본적으로 동행인 2인 기준 제공이 일반적이어서 뮤지컬, 오페라, 클래식 공연 등에는 공짜티켓이 거의 불가능하다.

 

12월 4∼5일 내한하는 마리스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공연 포스터.

 

최근에 한 클래식 전문 공연 기획사가 준비한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내한공연 티켓 가격이 파격적으로 2~3층 전석 2만5000원에 책정된 것도 후원사 초대티켓 발급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을 어기지 않고, 후원사에 초대권으로 발급해주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지만, 반대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클래식 공연이나 오페라의 경우 기업들이 후원하고 후원액에 해당되는 티켓을 제공받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다보니 공연 좌석의 앞쪽은 주로 후원사로부터 공짜로 티켓을 받은 관객들이 많았다. 공연에 대한 충성도가 그만큼 떨어지다 보니 초대권을 뿌린 기업의 후원 공연들은 매진사례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빈 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김영란법에 의해서 이런 공짜티켓 관행이 사라지고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공연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공짜티켓이 사라지면 공연시장의 경쟁력이 살아날까? 갑을 향한 수준 높은 접대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공짜티켓이 사라지면서 점차적으로 공연시장을 탄탄하게 만들어 줄 진성 유료관객이 증가할까? 아직까지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이르다. 각종 콘서트와 공연예술 축제에서 뿌려지던 공짜티켓과 리셉션이 최근 사라진 것은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 몸을 사리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공짜티켓을 문화마케팅으로 연결하려는 기업의 후원 관행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5만원이라는 합법적 공짜티켓의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공연시장의 수익 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린다.

 

김영란법은 우리가 알고도 그냥 넘겼던 공연예술계의 묵은 관행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빈 좌석으로 공연하느니 차라리 공짜티켓이라도 뿌려서 좌석을 채우고 가자는 관행, 후원하는 기업에 공짜티켓은 너무 당연하다는 관행, 공연계를 지원하는 고위 공무원들을 초대하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관행이 과연 올바르고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공연 수는 선진국 수준 못지않게 많다. 다만 유료관객 비율이 선진국 수준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클래식, 발레, 국악, 연극 등 순수예술에 해당하는 공연들의 유료관객 비율은 공연시장의 내실화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김영란법이 곧바로 공짜티켓의 관행을 없애고 유료관객을 늘릴 수는 없다. 다만 이 법이 그러한 환경으로 가는 강제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가능하다. 김영란법이 공연예술계 공짜티켓의 과도한 관행을 근절시키고 공연시장의 양성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보완할 점이 많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이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는 서민들의 문화 향수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프레스 티켓을 발급받는 기자들의 공정한 취재 권리를 억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공짜티켓을 지원금 액수만큼 받는 기업들의 후원문화가 사라져야 하고, 권력과 권한으로 공연 티켓을 공짜로 받았던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관람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적절한 가격에 더 많은 유료관객들이 형성될 수 있는 공연예술계를 위한 꼼꼼한 문화정책이 요구된다. 공연을 접대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낡은 관행과 단절하는 것, 즉 공정사회뿐 아니라 문화사회로 가는 것이 김영란법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