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말이 말이 아닌 기이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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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말이 말이 아닌 기이한 세상

주지하다시피 정치권을 흔드는 새로운 시험판이자 급조된 정국돌파용 ‘블랙홀’로 떠오른 개헌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비선 실세’와 두 개의 재단이 중심이 된 숱한 의혹과 논란들, 그리고 한 여대생이 받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특혜’에 대한 관심을 결코 접을 수는 없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통칭되는 일련의 쟁점들 속에 권력남용, 국정농단, 불법과 비리의혹, 진상규명, 윗선 등과 같은 단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보도와 공적영역을 넘어 일상의 대화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회람된다.

 

어떤 공적인 직책도 위상도 없는 한 여인과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행사된 권력 작용의 은밀한 이면과 기이한 행태가 똬리를 틀고, 다양한 추론과 해독을 생성하고도 있다. 독자의 시선을 잡아채는 ‘최강순실 넘버원’이라는 관련 기사 속 패러디성 댓글이 주는 반향이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지난 6월 대학로의 연우소극장에서 연극인들이 ‘권리장전 2016’ 출범식을 열고 있다. 가림토 제공

 

나아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라는 보수언론의 사설 제목이 현 상황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짚어주기도 한다. 이런 정경을 접하면서, 진한 허탈감과 분노가 일순 마음속을 헤집고 헝클어놓는다. 대한민국 아니 헬조선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리 고달프고 감정적인 노동을 동반한다는 것을 예전엔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던 듯도 싶다.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전개되는 이 대형 정치드라마 속의 서사와 화법은 우리가 대면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웃프게’ 소환하기도 한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구성을 위해 재벌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고, 관련 부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설립인가를 내준다. 문제점과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커질 무렵에, 전경련은 두 재단의 ‘해체’와 ‘통합’을 보란 듯이 선언한다. 한때 능력을 인정받던 CF 감독은 문화콘텐츠를 만들던 실력을 넘어 막강한 용인술과 ‘창조적인’ 기획력을 발산하며, 급기야 요동치는 이 사건 속의 핵심 캐릭터로 떠오른다.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한 여인의 따님은 입학과 학사관리에서 평범한 학생이 받을 수 없는 수준의 특별하고 지극정성이 깃든 배려를 받았으며, 결국은 자신이 속한 대학의 총장을 낙마시키는 데 일조하는 실로 드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전모의 일각만이 드러난 현재, 진행형의 의혹과 관련하여, 총리는 “이 정부 동안 비선 실세를 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다. 청와대 쪽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사태가 커지자 ‘불법’의 가능성에 대한 엄중한 수사를 논하면서도, ‘의미 있는 사업’에 의혹과 ‘인신공격성 폭로’가 이어지면 사회적 위기를 가중시킨다는 입장을, 아니 선택적인 해명과 경사진 논리를 고수한다.

 

한편 그 자신이 특혜의혹과 숱한 구설 속의 인물로 등극한 민정수석은 비서실장 부재 시에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는 요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당당하게 제출한다. 정치적 논란과 쟁점을 풀어갈 독립된 힘과 공적 존재감을 발휘해야 할 여당의 핵심 인물들은 국감 증인청구를 온몸으로 막아서더니, 맹렬하게 점화되어 온 쟁점들을 강 건너 불 정도로 관망하다가, 해묵은 레드카드를 다시 꺼낸다.

 

이런 난맥상과 무리수의 정도는 어떤 진단법을 사용해도 혼탁하고 기이하며, 이미 그간에 낯익은 경직된 관성이나 버티기 수준을 넘어 뻔뻔한 허언과 강변의 퍼레이드가 어지럽게 전개된다. 이도 모자랐는지 궁색하고 상식을 벗어난 조연들의 말이 더해진다. 물대포의 직사에 맞아 생명을 잃게 된 분을 급기야 ‘정말 농민’이 맞느냐고 되묻는다. 그분의 따님이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로 놀러갔다’고 강변하면서, 일각의 보수언론은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란 일갈을 서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코너링’ 능력이 뛰어나 민정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발탁했다는 경찰청의 해명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워 보인다.

 

동시에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입이 부르트게 강조하면서, 정권의 불통과 독선에 비판과 저항의 상징적 몸짓을 표출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블랙리스트’로 응대하는 몰상식과 ‘구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갈등과 상처들, 분노들을 대체 어찌하려는가?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다고, 지난 주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이 보여준 진실을 향한 흔치 않은, 동시에 세밀한 검증의 노력과 용기에 감사를 드리면서, 이 끝낼 수 없는 이야기의 서막을 여기에 또박또박 적는다. 비록 갈 길이 멀고 험하지만, ‘사람의 길’을 가려는 우리는 불의와 망각에 대항하는 이성의 힘과 연대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