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고영욱과 아이돌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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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고영욱과 아이돌 판타지

김선영|대중문화평론가

 

 

개봉을 앞둔 영화 <아이엠>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다큐멘터리다. 소녀시대,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정상급 아이돌 스타들을 보유한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SM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야심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SM 대표 스타들이 힘겨웠던 연습생 시절을 거쳐 최고의 아이돌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SM은 이 성공담의 정점에, 꿈의 무대라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월드투어 공연을 위치시켰다. 대기업 CJ엔터테인먼트의 자본으로 제작된 이 작품이 일깨워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아이돌 성공신화가 어느덧 블록버스터급 서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 성공신화에는 이 시대의 지배적 양식인 자기계발과 생존의 서사가 압축적인 형태로 드러나 있다. 어린 나이에 오디션을 통과해 춤에서부터 노래, 개인기, 외국어에 이르기까지 기획사의 집중 트레이닝과 무한경쟁체제를 거쳐 ‘글로벌 아이돌’로 육성되는 성장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한명의 탄생기는 그 자체로 거의 모든 분야의 오디션을 종합한 서바이벌의 완성판과도 같다. ‘K팝스타’의 지위를 아이돌이 독점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도 이러한 시스템 덕분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낳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개발 신화가 독점과 폭력을 가리고 있었던 것과 흡사하다. 아이돌의 경우 기획사 주도의 집중 육성 신화 뒤에는 ‘관리’라는 이름의 인권침해, 혹사, 착취의 그늘이 드리워 있다. 특히 1일 총열량이 900㎉에 불과하다고 해서 논란이 된 다이어트 식단의 소녀시대를 대표로, 컴백 때마다 다이어트 결과 공개가 의무처럼 되어버린 걸그룹의 몸에 대한 검열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SM소속 가수들의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뉴욕’ 공연 모습 l 출처:경향DB

 

더 심각한 것은 아이돌 스타의 그것보다, 아이돌을 꿈꾸는 10대 연예인 지망생의 현실이다. 현재 10대 연예인 지망자 수는 서바이벌 오디션의 증가, 갈수록 화려해지는 아이돌 성공신화로 인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종영된 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는 톱10 안에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절반이 10대, 나머지 절반이 20대 초반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중 연령대가 가장 어렸다.

 

지난해 배용준과 박진영이 합작한 청소년 드라마 <드림하이>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 10대들의 판타지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었다. 극중 배경 기린예고는 아이돌 사관학교로 학생들은 입시 과목 대신 춤과 노래와 연기를 배운다. 평범한 학생 삼동(김수현)이 이곳에서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깨닫고 노력해 한국 최초의 그래미 수상자가 된다는 내용의 이 아이돌 성공기는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올해 방영된 속편 <드림하이2>는 아이돌 판타지의 이면을 건드린다. 기린예고는 아이돌 명문사관학교에서 영락하여 거대 연예기획사에 팔렸고, 학생들은 아예 합숙소 연습생 취급을 당한다. 서바이벌 서사는 더 강력해졌고 평범한 학생들만이 아니라 이미 아이돌 스타가 된 학생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여기에 아이돌을 이용하려는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과 갈등하는 현실적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드림하이>의 판타지를 원했던 10대들에게는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드림하이>와 <드림하이2>의 양면적 현상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 <아이엠>이 아이돌 성공신화를 극대화한 블록버스터급 판타지라면, 최근 일어난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연습생 성폭행 사건과 가수 고영욱의 10대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논란은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드림하이2>의 현실보다 <드림하이>의 달콤한 판타지에 환호했듯이, 스타가 되고 싶은 소년소녀들은 뉴스에 분노하기보다 자신들의 우상을 보기 위해 <아이엠>의 개봉관 앞에 길게 줄을 설 것이다. SM은 이 영화의 포스터에 ‘리얼 청춘 바이오그라피’라는 홍보문구를 덧붙였다. 이제는 아이돌 성공기가 10대들의 꿈과 성장 드라마를 대체하는 데까지 결국 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