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6명의 남자가 자메이카의 한 저택으로 침입한다. 그들은 서둘러 총기를 난사한다. 마지막 총알이 어느 레게음악가의 심장을 감싼 가슴뼈와 왼쪽 팔을 스친다. 순간 밥 말리의 바지와 티셔츠는 피로 물들어버린다. 그는 테러범의 피격과 살해 협박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음악공연을 감행한다.
1960년대 말에 등장한 레게의 음악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음악이 존재하는 공간에는 늘 음악가가 있기 마련이다. 소개하는 밥 말리는 자메이카의 세인트앤에서 태어났다. 미관을 자랑하는 음악가의 고향은 정복자 콜럼버스가 1494년에 도착한 장소였다. 그곳에는 미국처럼 토착 인디언이 살고 있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스페인의 무차별적인 식민화 작업이 진행됐다. 비극의 역사는 원주민의 학살과 자살로 이어졌다.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발하자 스페인은 앙골라로부터 노예를 수입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1655년부터 영국이 자메이카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먼저 차지하는 세력이 대륙의 주인 행세를 하는 침략의 시대였다. 세계의 3분의 1을 식민지화했던 침략국가의 촉은 자메이카로 향했다. 영국인의 강압통치는 무려 80년을 이어갔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태어난 자메이카 토착민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굴욕의 삶을 견뎌야 했다.
1838년에서야 진정한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 이어지는 노동력 부족 현상은 식량 부족 현상으로 이어져 영국의 간접적인 피지배국으로 남게 된다.
밥 말리는 1945년에 태어났다. 인터뷰에 나오듯이 그의 음악은 울음으로부터 시작한다. 10살 때 세상을 떠난 영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밥 말리는 제도권 교육과는 동떨어진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자신처럼 가족과 국가를 잃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음악가의 삶을 택했다. 1960년대 중반에 ‘울부짖는 자들’이라는 의미의 웨일러즈(The Wailers)라는 그룹을 만든 밥 말리. 그는 1972년 데뷔음반 발표와 동시에 레게음악 붐을 일으켰다. 아쉽게도 자메이카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비참한 역사는 뒤로한 채, 단지 대중문화의 일부분으로 레게음악이 소비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단지 즐기는 음악으로 레게를 취급하는 바깥세상에서 밥 말리는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의 음악은 노예제와 인종갈등에 대한 직선적인 비판과 고발이었다. 레게음악을 단지 토속음악 정도로 취급하려던 미국과 영국에서 조금씩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밥 말리는 단순한 대중음악가가 아닌 사회운동가의 면모를 장착한 존재로 거듭났다.
록, 솔, 블루스, 펑크적인 요소를 혼합한 웨일러즈는 세계 음악의 주류로 떠올랐다. 이들은 1973년 관객의 대부분이 백인으로 채워진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자메이카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세력 간의 갈등이 고조를 이루고 있었다. 공연을 중단하라는 괴한의 협박전화에 이어 밥 말리는 총격을 당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목숨을 걸고 공연장 무대에 다시 올랐다.
선거는 민중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자메이카 유권자는 밥 말리가 지원하던 정치인 마이클 만리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CIA는 밥 말리에게 자메이카에서 머물면 테러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밥 말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생존입니다. 이곳은 지금도 대량학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메이카는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작은 나라입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건 어리석은 전쟁뿐입니다.”
1981년 망명자 밥 말리는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정치갈등의 현장이자 고국인 자메이카로 향했다. 이후 문화상품으로 재등장한 밥 말리의 이미지는 자유와 방종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자메이카를 뒤흔든 식민주의는 한국을 포함한 피해국의 정체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는 음악으로 세상에 맞선 탈식민주의자였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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