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라 불리는 이 교향곡은 1942년 3월 쿠이비셰프에서 초연이 펼쳐진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찬사 일색이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소비에트 예술의 위대한 날’이라는 제목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세계를 인정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무렵에 완성한 곡을 통해서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을 넘어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알린다.
7번 교향곡은 1942년 8월 실제 레닌그라드에서 다시 연주되어 같은 해 문학, 예술, 과학 분야에서 이룬 성과물을 치하하는 스탈린상을 거머쥔다.
당시만 해도 독일의 침략전쟁을 비난하던 세계 언론은 스탈린을 독일의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심지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스탈린을 194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세계전쟁이 만들어낸 오류이자 착각이었다.
레닌에 이어 정권을 잡은 스탈린에게 음악이란 정치권력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공산주의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했던 레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모든 문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만을 창작원리로 해야 한다는 스탈린의 발언은 소련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짓밟는다. 여기에 스탈린이라는 권력자를 찬양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일명 ‘스탈린주의’가 독버섯처럼 스며든다.
히틀러의 전쟁은 나치 독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비뚤어진 민족주의가 원인이었다. 스탈린의 통치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교묘하게 결합한 후에 일당 독재체제를 위한 우상화를 획책한다. 여기에 음악이라는 선동도구를 양념처럼 활용한다. 스탈린의 입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고전하는 소비에트 국민을 위로하는 선동음악일 뿐이었다.
소련 내에서 쇼스타코비치는 1930년대부터 음악적 명성이 자자했다. 당시 스탈린은 클래식에 사견을 주입하기를 즐겼다. 여기서 사견이란 음악애호가의 모습을 한 철권통치자의 정치적 발언을 의미한다. 이미 소비에트연방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 잡은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를 눈치챈 소련 공산당의 대변인 격인 ‘프라우다’가 포문을 연다.
1936년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상연이 금지된다. 마치 스탈린의 목소리를 변형한 듯한 비난기사가 ‘프라우다’에 실린다. 사회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라는 이유가 비난의 핵심이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누나, 매형, 장모, 삼촌이 체포되었으며 도청이 일상화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 탄압을 통해서 예술가 전체를 견제하는 이중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여기서 음악이란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봉착한다. 간단한 질문이 아님이 분명하다. 현실에 대한 해석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1936년 이후 쇼스타코비치에게 현실이란 무엇이었을까. 독재자 스탈린의 입맛에 맞는 음악 창작이라는 답변이 가능하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생계수단인 음악을 위해 스탈린의 독주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사후에 발견한 쇼스타코비치 전기에서는 정치권력에 휘둘렸던 노예술가의 심정이 드러난다. 작은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7번 교향곡을 만든 배경이 단지 독일과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자국민만을 위함이 아니라 스탈린 체제에서 피해받은 민간인을 기리는 곡이라는 말을 남긴다. 1953년 3월6일 스탈린은 사망한다. 같은 날 음악가 프로코피예프 역시 세상을 떠난다.
레닌그라드 전투는 혹한, 질병, 굶주림이라는 3중고 속에서 치러진다. 1942년 2월에는 무려 600명의 소련인이 식인행위로 체포된다.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라는 전쟁의 주제가였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선율에는 스탈린이 획책한 지옥도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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