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K팝의 가치 훼손한 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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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K팝의 가치 훼손한 YG

끝내 불똥이 양현석에게 옮겨 갔다. 클럽 버닝썬과 승리에서 시작되어 아이콘 멤버였던 비아이가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종지부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YG소속 아이돌들은 일반적인 한국 아이돌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빅뱅이 ‘거짓말’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그들의 별명은 ‘다크 아이돌’이었다. 한국 아이돌 역사에서 그들은 ‘거리’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첫 사례였다. 틀에 박힌 모범생이 아니었다. 패션과 이미지, 모든 면에서 빅뱅은 무척이나 자유분방해 보였다. 지드래곤을 중심으로 음악을 직접 만들고 해외의 셀렙들과 교류하며 ‘록스타’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쌓아나갔다. 그래서일까. 연예인, 특히 아이돌에게 따라 붙기 마련인 이런저런 구설과 스캔들도 차원이 달랐다. 승리까지 포함해서 셋이 대마초와 마약에 연루되었으니 말이다. 빅뱅뿐 아니라 투애니원의 박봄은 암페타민을 밀수하다가 적발됐다. 마침내 버닝썬 스캔들이 터지고 비아이까지 의혹이 불거지면서 양현석이 회사를 떠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일련의 과정은 K팝이 추구해온, 혹은 생존을 위해 선택해온 가치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사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양현석은 6월14일 YG 홈페이지에 "오늘부로 YG의 모든 직책과 모든 업무를 내려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K팝의 역사는 인정투쟁을 위한 변증법의 길이었다. 춤이 먼저이고 노래는 나중이라는 편견을 깼다. (보아) 가창력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메인 보컬로 키운 아이들로만 그룹을 결성했다. (동방신기) 10대뿐만 아니라 ‘이모팬’들까지 타기팅했다. (샤이니) 내수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스스로 수출상품이 되기 위해 초기부터 외국인 멤버를 영입하곤 했다. 이를 실현한 방식은 태릉선수촌에 비교할 수 있는 연습생 시스템이었다. 중학생,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트레이닝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일상적 관계는 배제된다. 


아이돌을 꿈꾸는 한국의 10대들은 학교 대신 기획사에서 또래와는 다른 길을 진작부터 걷기 시작한다. 일부 예술고등학교의 경우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데뷔가 예정된 학생은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엘리트 스포츠 교육의 시스템이 고스란히 엔터테인먼트에도 전이된 셈이다. 기획사는 자신들의 컨베이어벨트에 백지 상태의 재료를 올려 다른 나라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돌은 데뷔 전부터 만들어진 팬덤을 교두보 삼아 자국과 타국을 누비며 활동한다. 20세기 초중반 미국 틴 팬 앨리에서 시작된 스타 시스템, 말하자면 대중음악 산업의 포디즘은 한국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K팝의 또 하나 특징은 ‘착하다’는 것이다. 팝의 역사는 비주류 젊은이들의 문화가 주류를 강타하는 식으로 쌓아 올려졌다. 시골 트럭 운전사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와 천대받던 흑인 청년 척 베리가 주도한 1950년대 로큰롤 혁명, ‘늙은 사자’ 영국 리버풀 출신 비틀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신드롬부터 그랬다. 1970년대 후반의 펑크 무브먼트, 1980년대 힙합의 탄생과 헤비메탈의 대두, 1990년대 얼터너티브 혁명까지 지난 세기의 음악적 분기점은 모두 변방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기성세대와 주류 문화에 대한 환멸을 장착하고 있었고, 그들이 받는 억압과 불만을 보다 과격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음악에 담아냈다. 당대의 젊은이들 마음을 대변했다. 대중문화의 주된 시장은 10대와 20대이고 이를 지탱하는 인구층이 두꺼울수록 승리는 보장됐다. 


반면 K팝은 반항도, 저항도 하지 않는다. 음반시장 붕괴와 저출산 현상이 맞물린 한국 시장은 더 이상 젊은 세대만으로 지탱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지갑을 열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의 기획사들이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빌미를 통제해온 이유다. 그 결과, K팝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는 흐름이 됐다. 


YG를 둘러싼 여러 정황과 사고는 이 회사가 K팝의 핵심가치를 등한시해왔음을 보여준다. 빅뱅이 보여왔던 활동과 이미지가 결과적으로는 양날의 칼이었음을 드러낸다. K팝의 이단아가 될 수 있었던 YG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