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는 화자가 이야기할 때 평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거나 딴청부리는 자세를 취해 최대한 듣지 않도록 합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을 계속 보거나, 자료를 보거나 하여 화자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화자와 눈을 맞추지 말고, 어떠한 응대 또는 대꾸도 하시면 안됩니다. 실습이 끝나는 시간까지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어떤 커뮤니케이션 워크숍의 실습 자료를 접했다. 상대가 경청하지 않을 때의 기분을 느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순서였다. 이 예문이 이른바 ‘딴청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경청의 기술’은 이와는 정반대겠다. 다른 도구에 집중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자세를 취하고, 특히 눈을 맞추고, 화자에게 나름의 반응을 전달하는 것 말이다. 사람들은 이 실습에서 청자의 존재가 대화의 중요한 일부이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 행위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짧은 경험에 의하면,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경청하는 태도는 언제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소통의 참여자가 적어질수록 더욱 커졌다. 대형 강연을 들을 때는 잠시 딴청을 피울 수도 있지만 대여섯명 단위로 토론을 하거나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때는 상황이 달랐다. 듣는 것은 대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쉼 없이 경청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는 잘 듣는 일에도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화에서만큼 음악에서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겨진다. 음악가와 관객, 무대와 객석이라는 명확한 구분을 보면, 음악은 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 소통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간혹 음악을 듣는 것이 미묘하지만 분명한 쌍방향 소통이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건 바로 서로 대화라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서 음악을 들을 때다.
‘더하우스콘서트’에 처음 갔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이곳에서 음악을 듣는 경험은 전문 공연장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은 여러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처음엔 그 이름처럼 ‘집’을 무대로 삼았던 만큼, 더하우스콘서트에서는 정말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음악가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한 공연에서는 운 좋게 가수의 시선이 머무는 앞줄 정중앙에 앉게 되어 한 시간 내내 가수의 얼굴을 마주하고 노래를 들었는데, 마치 일대일로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닻올림’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실험·즉흥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닻올림의 공연은 최근까지 가정집 거실 크기의 공간에서 열렸다. 이곳에서는 옆자리 관객과의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음악가와 관객의 거리가 몹시 가까웠다. 때로 닻올림의 공연에서 음악가가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면 관객들이 내는 소리도 공연만큼 예민하게 듣게 됐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인지 종종 그 소리가 음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들렸다. 그런 묘한 경험이 누적되다보니 관객과 음악가가 사실은 일종의 ‘협주’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나는 이 공간들에서 음악을 듣는 관객의 존재가 공연의 중요한 일부이고,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 행위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런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고 나오는 길이면 가끔은 큰일이라도 마친 것처럼 긴장이 확 풀리기도 했다. 비록 내가 침묵하고 있을지언정,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자와 대면하고 음악을 듣는 것은 분명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은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을 더 경청하게 만들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 나은 소통을 위해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귀 기울여 듣는다. 이것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기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경청하는 것이 계속해서 가꿔나가야 할 삶의 중요한 태도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음악의 현장에서 그 무엇보다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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