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회화는 여러 미술 분야 가운데 거의 특권적 위치를 향유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고 새로운 산업적 인쇄, 복제기술이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유포되면서 회화의 위상은 매우 의문스럽게 되었으며 이전의 재현회화의 기능과 역할은 철저히 붕괴되었다. 이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은 이미지 생산이라는 사회적인 기능을 회화보다 더 완벽하고 객관적으로, 더 빠르고 값싸게 수행하였다. 따라서 공공연하게, 아니 노골적으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선언하는가 하면 회화의 종말론이 대두되었다. 화가들 중에는 회화를 포기하고 사진가가 되거나 그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당시 회화의 위기 문제는 무엇보다 회화가 더 이상 미술의 중심으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회화가 사적 생활공간과 공적 생활공간에서 문화적 상징기구로서의 위상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편 회화가 지녔던 주거공간에서의 기념비적 물신의 기능을 대중문화의 우상 혹은 그 밖의 다른 사물들이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추상미술이나 뒤샹의 오브제 작업 등은 그런 맥락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회화는 사라지기는커녕 더욱더욱 새롭게 번성하고 있다. 오늘날 미술에서 회화는 여전히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이 최초로 경매에서 낙찰됐다는 소식이 화제다. 지난 10월25일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에드몽 벨라미’라는 그림이 43만2500달러(약 4억9400만원)에 낙찰됐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 예술단체 ‘오비우스’가 개발한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린 것을 캔버스에 인쇄한 것이다. 14세기와 20세기 사이에 그려진 인물사진 1만5000장을 인공지능에 제공한 다음 이미지가 인간 혹은 기계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구별하는 테스트를 통과할 때까지 딥러닝을 계속해서 제작했다.
여기에는 두 부분의 알고리즘을 사용했는데 제너레이터(생성기)와 디스크리미네이터(선별기) 저작권이 소멸된 14세기에서 20세기까지 그려진 초상화 1만5000점의 데이터를 사용, 제너레이터가 이 초상화들에서 이미지를 생성해내고, 디스크리미네이터가 각각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측면 얼굴을 보여주는데 물감이 뭉개져서 그림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우측 하단에는 서명을 대신해 그림 제작에 쓰인 알고리즘 수학 공식을 적어놓았다. 이러한 서명은 알고리즘이 동일한 결과를 다시 생성하지 않기에 복제가 어렵다는 사실, 따라서 이 초상화를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증하는 제스처로 보인다. 하여간 이 그림을 낙찰받기 위해 5명이 경합을 벌였고 7분 동안 진행된 경매 끝에 낙찰자는 크리스티 측에서 예상한 가격(7000~1만달러)의 약 40배를 내고 그림을 가져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화가의 손을 떠나 기계가 그림 그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기계적 장치가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인공지능이 특정 작가의 그림인 것처럼 창작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분명 이례적이다. 이제 인간의 손에 의해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그리는 일은 무의미해지는 것일까?
회화는 인간의 개별적인 몸, 감각이 화면 위에 가설되는 장르다. 그것은 특정한 대상을 그렸거나 흔적을 남겼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회화는 그 누구도 공유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감수성, 감각을 선과 색채, 붓질 등을 통해 가시화하기에 문제적이며 고유성을 지닌다. 그것들은 그 작가가 접한 세계와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발설한다. 따라서 회화는 사진의 발명과 영화, 컴퓨터,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등장 속에서도 결코 죽을 수 없었다. 회화는 그 어느 장르보다 탁월한 ‘감각의 예술’이기에 그렇다. 살아있는 신체가 반응하는 모든 감각을 추출한 것이 회화다. 감각이란 세계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으로 접근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회화란 감각을 자극하는 생의 에너지와 리듬을 포착하여 보는 이의 감각에 그 힘을 돌려주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회화의 힘이 있다. 인공지능이 결코 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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