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출판의 확장, 그리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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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산책자]출판의 확장, 그리고 자유

10월엔 출판계에서 가장 큰 국제행사가 열린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올해도 7500개 회사 혹은 기관이 전시에 참가해서 성황리에 열렸다. 출판계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관련 행사들도 많이 열린다. 정성껏 만든 책을 세계 출판계에서 선보이는 데 가장 좋은 자리일 뿐 아니라 출판계가 돌파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거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사례 발표, 세미나 등도 열린다. 국제출판협회, 국제저작권기구, 복제전송권기구, 국제도서전감독모임 등도 이 기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의를 연다.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첫 3일도 북적이는데, 일반인들에게 전시장을 개방하는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올해의 두드러진 화두는 확장과 자유였다. ‘확장’은 올해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 내걸었던 큰 제목과 일치한다. 이는 전 세계 출판계가 모두 ‘확장’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오감이 있고 그 감각을 통해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근거로 판단을 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시각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절반을 훨씬 넘는다. 그리고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시각적인 정보를 담는 주된 매체가 책이었다. 추상적인 정보도 담을 수 있는 언어를 시각적으로 전환시킨 문자의 발명도 책을 인류 문화의 중심에 오랜 시간동안 머물도록 했다. 하지만 정보를 전자적인 형태로 저장하고 변환하는 뉴미디어의 등장은 책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 마련된 ‘여름, 첫 책’ 코너에서 관람객들이 피크닉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출판계는 뉴미디어가 정보를 담는 그릇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책의 정의를 다시 하여 확장을 꿈꾼다. 정보 혹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편집하는 과정은 전통적으로 출판업의 영역이었고 독자를 만나는 매체의 성격만 조금 바뀐 것이니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충분하다. 하지만 뉴미디어의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뉴미디어가 책과 같이 콘텐츠를 담지만 유통방식부터 즉자적으로 일어나고 반영되는 독자들의 태도까지 근본적으로 달라져서 출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산업이 등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출판사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다루는 다양한 유형의 회사들의 전시를 유치하고 선보인 이유는 출판계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면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차이 때문에 충돌이 생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미나와 국제회의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저작권의 예외 인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전통적인 매체를 오랜 세월 운영해 온 출판계는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가격이 지불되기를 원하고 플랫폼을 운영하는 거대 기업들은 가능하면 가격을 덜 지불하고 이미 구축된 세계를 디지털의 영역으로 옮기기를 원한다. 명분은 전 세계인이 접속하고 있는 디지털의 세계에 인류의 자산을 옮겨놓고 공유하자는 것이지만, 플랫폼 운영에서 발생한 막대한 이익은 역설적으로 가치를 생산한 주체들에게 기여에 맞는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어떤 형태, 비율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고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는 종이를 넘어서 ‘확장’해 가는데, 그곳에 담을 내용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 있는가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의 또 다른 화두였다. 그곳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 총회에서 러시아는 출판이 정부에 종속되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회원 가입 신청이 부결되었다. 출판의 자유를 위한 볼테르상을 중국에서 구속된 출판인에게 수여했다고 반발한 중국출판협회는 회비 납부를 하지 않았고 회원 자격은 정지되었다. 도서전이 정치적인 주장을 담은 책들과 출판사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질 것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국제도서전 감독들도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출현과 정치적인 입장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도서전 자체의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호소를 했다.

 

이 문제를 내년 6월 열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크게 다룰 예정이다. 출판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출판인들에게 주는 볼테르상 시상식이 그 기간에 열린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기간부터 수상자 선정과정이 시작되었고 내년 봄 런던에서 후보자 명단이 발표된다. 그리고 여름, 서울에서 수상자를 만난다. 이 시상식에서 식민지 시기, 그리고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출판의 자유를 위해 노력한 출판인들의 잊혀진 역사를 복원한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출판은 산업이지만, 자유를 위한 갈망이기도 하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