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문화계를 분탕질한 차은택의 범죄 행각이 드러나는 어수선한 정국에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아문당)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아문당은 개관 전부터 예산삭감으로 직원 채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개관 직전 예술감독이 교체되는 등 파행 운영을 거듭했는데, 작금의 정국과 관련된 음모가 개입돼 있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있었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서 열린 개관 1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아문당의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했다.
그럼에도 준비 기간을 포함, 10여년 동안 총 7162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한 이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은 광주의 자랑거리다. 지난주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를 찾은 어느 미디어 아티스트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아문당과 같은 초일류 문화예술 시설이 수도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활용도가 떨어지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문당이 ‘국립’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자신도 이 시설을 활용할 권리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갸우뚱해졌다. 지역문화재단이 별도로 있는 만큼 아문당은 ‘지역성’이 아닌 ‘한국’과 ‘세계(아시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도 흔쾌히 동의해주었지만, 수도권의 예술가나 관객들이 진보적 예술 현장을 찾아서 불편을 감수하고 직접 지역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적 전복의 의미를 갖는다. 아문당의 존재 의의는 바로 그 ‘지역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아문당의 명칭에는 두 가지 키워드, ‘아시아’와 ‘문화’가 들어 있다. 아문당은 ‘한국 문화’도 ‘세계 문화’도 아닌 ‘아시아 문화’를 표방한다. 여기서 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 공간과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단어에 함의된 폭력적 국가주의로부터도, 서양의 문화제국주의가 오염시킨 ‘세계’라는 이름의 허구적 보편성으로부터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제시된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가 자리하는 물리적 공간(지역)을 잊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인간적 가치(보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 말하자면 ‘지역적 보편’이라는 21세기적 비전 탐구를 위한 키워드인 것이다. 아문당은 아시아 예술가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물리적 장소로서의 기능도 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지역적 보편의 가치 공유를 위한 역사·문화적 모델이 설정되어야 한다. ‘광주의 오월’이 그 핵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문당은 또한 ‘예술의 전당’이 아니라 ‘문화의 전당’이다. 음악인의 시각에서 둘의 차이는 쉽게 판별된다. 예술의 전당이라면 ‘예술음악’이 부각되고 ‘콘서트홀’ 중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융합, 나아가 예술과 삶의 융합이 강조되는 문화의 전당에서 음악은 융합 예술을 위한 한 가지 중요한 매체로 간주될 뿐이다. 음악전문가로서 아쉽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아문당에는 어쿠스틱 음향을 세심하게 고려한 콘서트홀이 사실상 없다. 대신 ‘예술극장1’과 같이 객석과 무대를 창작자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설치 구성할 수 있는 대규모 가변형 극장이 있으며, 그 밖에 사운드아트나 미디어아트의 융합적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는 첨단의 복합 전시관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하드웨어가 그렇다면 그에 맞는 음악공연이 기획되어야 하는데, 아문당의 음악공연 기획자에게는 그 자체로 도전적 과제가 될 것이다. 요컨대 아문당은 20세기식 현대음악 연주회의 관습조차 뛰어넘는 문화적 전복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아문당의 페스티벌 공연을 관람한 뒤 아문당과 맞닿은 금남로 거리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어떤 전복의 순간을 예술적으로 꿈꾸고 있을까? 그들은 예술과 삶의 융합이 매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연출되어야 하는 부조리한 나라의 예술적 국민이다. 내년 아문당 개관 2주년에는 촛불 시민들이 더 이상 추운 거리 위가 아니라 아문당의 예술광장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최유준 전남대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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