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은 68번째 광복절이었다. 말하고 나니 맥이 풀린다. 큰 감응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70번째 광복절이 돼도 그런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 착잡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는다. 마침 어젯밤 친구와 술을 마시며, 광복절을 두고 객쩍은 얘기를 나눈 차였다. 화제에 오른 것은 광복의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광복이 현재적 순간이라고 가정할 때, 말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로 지금 광복을 접했다 할 때, 기분은 어땠을까, 하는 것. 물론 짐작할 수야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결국 불가해한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데, 둘은 생각을 같이했다. 이는 같은 해 세계 곳곳에서 마주했을 ‘해방’의 기분을 되짚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해방의 기분,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가 그토록 주억대는 감정 목록 가운데, 실종된 그 감정 말이다.
(경향DB)
사실 요즘같이 감성과 감정에 연연하는 세태도 없을 것이다. 화, 우울, 기쁨, 행복감, 심지어 성적 충일감에 이르기까지, 감정들을 샅샅이 분석하고 다행스러운 상태에 이르도록 하려는 처방이 넘쳐난다. 심지어 사물들도 감성 자체를 전달한다고 자처한다. 감성디자인 운운으로 치장하고 시장에 나타나는 각종 물건들은 감성 자체가 사물이 가진 쓸모이자 효험이라고 넉살을 떤다. 나아가 우리가 겪는 사회적인 문제를 감정의 난조에서 발견하고 우리의 낙심과 침울함을 치유해주는 ‘힐링’ 요법이 창궐한 지도 오래다. 그처럼 감성이니 하는 것이 파죽지세인 시대에 오롯이 미지의 상태로 남은 감정도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다면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실은 그를 난처하게 돌아보는 내가 잘못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해방의 기분 따위란 어차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의 세계 저 편으로 숨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시간을 따라다니는 파토스는 항시 골칫거리였다고 볼 수 있다. 근대에서 역사적 사건의 시작은 단연 프랑스 대혁명일 것이다. 사건과 기분의 관계를 문제 삼게 된 최초의 사건 역시 그것일 것이다. 미리 주어진 운명의 계기에 불과했을 근대 이전 사건은 사실은 사건이라 부를 수 없다. 마치 자신에게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태를 어떻게든 납득해볼 요량으로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주역을 뒤져볼 때, 실은 우리는 사건이 아닌 운명의 조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미증유의 사건이었다면 이는 시간으로부터 운명을 제거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시간을 역사에 도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가들이 연대를 표기하는데 왜 그토록 과하게 집착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792년 9월22일을 역사의 첫날, 제1일로 시작한 혁명력(革命曆)은 나폴레옹 체제가 등장하면서, 즉 혁명을 부인하는 반동이 있기 전까지 새로운 시간의 개시를 알렸다.
샤를 테브넹이 그린 프랑스혁명 1주년 기념일 모습
흔히 서기라 부르는 그레고리력과 혁명력의 차이는 단지 시간을 셈하는 방식의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유치하다 싶을 방식으로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세월’이라고 부를 수 있을, 삶의 배경으로써의 시간으로부터 시간을 빼낸다. 그럼 세월로부터 빠져나온 시간, 역사로 훗날 부를, 그 시간의 압도적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시간을 충전하고 있던 감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프랑스혁명을 에워싸고 던진 가장 집요한 물음이 그 사건을 둘러싼 파토스의 정체를 해부하려는 것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해방의 기분을 향한 경악과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 파토스에 대한 공포로 인해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라는 이념을 창안했을 것이고, 그 열정의 해방적인 잠재성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수반하는 파괴적 광기를 길들이고자 하는 욕망이 헤겔 같은 이로 하여금 절대정신으로의 국가라는 것을 상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의 기분이 묘연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왜 해방의 파토스를 상기하는데 어려움을 겪을까. 그것은 아마 광복을 엄밀한 말뜻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할 수 없는 무능 탓일 것이다. 실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처럼 그날, 광복절을 기억하는 것.
서동진 |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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