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레코드 페어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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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레코드 페어를 앞두고

LP는 흔히 낭만의 아이템으로 통한다.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나오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들으며 좋았던 한때를 떠올리는 추억의 소환도구라고 한다. 그런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 있다. 오는 25일 강남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리는 레코드 페어다. 개인 및 업체들이 내놓은 중고 LP부터 희귀한 수입 LP까지, 여전히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의 지갑을 순식간에 비우는 음반들이 한곳에 모인다. 작년 가을 두 번째 행사에서는 조동익의 <동경> 등을 LP로 한정 제작했고 이번에는 이상은의 <공무도하가>, 미선이의 <드리프팅> 등 90년대부터 최근의 명반들이 LP로 제작, 한정 판매된다.



제1회 서울레코드페어를 보러 온 시민들이 전시된 LP음반을 바라보고 있다. (경향DB)


희귀 음반을 구하려는 컬렉터들이 아침부터 레코드 페어를 찾는다. 추억 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LP는 과거의 매체가 아닌 현재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CD는 음악을 디지털로 저장하는 출발점이었고, 음원은 음악을 탈물질화시킨 출발점이다. 그러나 LP는 음반의 역사에서 가장 완성된 아날로그 저장 매체다. 그리고 음악이 담긴, 가장 큰 물질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사운드는 디지털 사운드에 비해 과학적으로는 불완전한 음질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LP 사운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물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기도 하다. 백 마디 감사의 말보다 하나의 작은 선물에 더 기뻐하듯, 인간은 뭔가를 만지고 소유함으로써 실제를 깨닫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LP는 역시 좀 더 인간적이다. 커다란 종이 커버에 인쇄된 아트워크, 그 안에 들어있는 지름 17인치의 검은색 플라스틱은 우리가 음악을 소유하고 있다는 명확한 인식을 안겨준다.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거나 스트리밍으로만 듣게 되는 디지털 음원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LP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그 제의적 가치에 있다. 사실, LP를 듣는 과정은 무척이나 번거롭다. 겉커버에서 속커버를 꺼내고, 다시 LP를 꺼내서 턴테이블에 걸어놓는다. 그리고 바늘을 조심스레 올린다.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야 하고, 한 노래가 끝난 후 다음 곡 말고 다른 노래를 듣고 싶으면 일일이 바늘을 그 노래 위에 올려야 한다. 탭 한두 번이면 충분한 MP3나,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CDP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불편한 도구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좋아하는 음악에 도달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 의식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지는 음악은 그 자체로 개별적 사연을 만들어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지워버리는 파일에선 있을 수 없는, 그런 사연들을. CD와 음원에 밀려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것 같았던 LP 수요가 꾸준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음원이 음반 시대의 산업 규모를 완벽히 대체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시장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유일한 저장 매체가 LP다. 디지털의 공허함, 비물질의 허망함은 오히려 LP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편리함과 정교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LP는 그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에게 말해준다.


미국 솔트 레이크 시티에 사는 한 여성이 레코드가게에서 마이클 잭슨의 옛 LP판을 보며 울고 있다. (AP연합)



첫 레코드 페어에서 인상적인 손님이 있었다. 어떤 소녀였다. 미니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놓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그 소녀는 처음으로 LP를 듣는 것 같았다. 그 설레던 표정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검정 플라스틱에 새겨진 홈을 따라 흐르는 바늘이 전해주는 소리를 들으며 소녀가 내뿜는 공기가 달라졌다. 첫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신세계를 만나는 미소였다. 스스로 LP를 턴테이블에 걸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LP는 추억의 물건이 아닌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소녀를 보며 했었다. 오는 주말에도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기쁨이 다시 온다면 가지고 있는 LP 중에서 한 장쯤 쥐여주고 싶을 텐데.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