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좋아보여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불행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행복지수가 5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꼴찌라고 한다. 옛날같이 헐벗거나 굶주리지도 않으니 과거보다 분명히 더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하고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경향DB)
아주 어려서부터 우리 아이들은 바쁘다. 예전에는 아이가 피곤하다고 말하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피곤하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들은 동심을 노래하지 않고 어른들의 마음인 가요를 노래한다. 이것조차 선행학습인가? 아무리 어른들의 경쟁논리에 길들여졌다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의 감성과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노래에 공감을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어른들의 가요에 집착하는 것은 동심을 빼앗아 간 어른들에 대한 반항이 아닐까. 자신들에게 동심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부하면서.
어버이날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일이다. 친정아버지가 어린 조카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좀 해보라고 부추기셨다. 그랬더니 한 녀석이 대답하기를 요즘 누가 촌스럽게 동요를 부르냐는 것이다. 그러더니 사랑의 설렘을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알아듣기 힘든 은어와 어설픈 영어 문장들을 섞어서 말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5월을 추억하는 나에겐 꽤나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하긴 초등학교 교과서의 노래들은 내가 봐도 재미가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모심고 나물 캐고 새 쫓던 아이들의 정서를 알 도리가 없다. 소금장수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이들이 소금장수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원래 전래 동요란 누가 지었는지 모르게 아이들이 함께 부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노래다. 어른들이 일부러 만들어서 가르쳐 준 노래가 아니란 얘기다.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더 이상 아이들이 부르지 않는다면 그런 대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내버려 두면 될 일이다. 아이들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교육과정을 만들어 놓고, 공감 못할 노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나중에 전래 동요가 되는 것이니까.
학교 운동장에서 맨발로 고무줄 놀이를 즐기는 여학생들 (경향DB)
물론 좋은 노래만 있다고 아이들이 노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노래는 놀면서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체험되는 것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땅 따먹기를 하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불렀고,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를 부르지 않았던가. 놀지 못하니 함께 부를 노래도 없는 것이다. 놀 수 없고 노래할 수 없는 아이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학교폭력을 막겠다고 교육부가 뒤늦게 예체능 교육에 수백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 생각으로 정책을 세우기 전에 아이들의 마음과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현실은 이렇게 암울하다. 노래도 공부같이 해야 하고, 그나마 좀 좋아하려고 하면 그것을 가지고도 경쟁을 하게 하는 세상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악동 뮤지션 같은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고 방예담 같은 아이들이 나타나니 반갑지만, 그들의 취미와 재능을 장삿속으로 이용하는 어른들의 호들갑이 나는 정말 창피하다. 바로 그런 어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불행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동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노래를 돌려주자. 노래는 그들과 평생을 같이하면서 위로해 줄 친구다. 그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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