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자유’가 없는 록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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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와 삶]‘자유’가 없는 록페스티벌

여름이면 록 페스티벌을 다니는 게 계절 행사처럼 됐다. 올 여름 열리는 (무려) 다섯개의 페스티벌 중 세개가 막을 내렸고, 두 개가 남았다. 시장은 그대로인데 공급은 아메바 증식하듯 늘어나니 예년에 비해 모든 페스티벌이 한산하다(물론 보도자료에는 7만~8만명이 페스티벌을 찾았다고 나오지만 경찰의 집회 참가인원 수치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게 한국 페스티벌 관객수다). 2006년에 하나로 시작, 2009년에 두 개가 되더니, 지난해에 세개가 됐다. 거품이구나 싶었는데 일년 만에 다섯개가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한적하고 풍광 좋은 휴양지 대신 록 페스티벌에 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음악이 있고, 일탈이 있으며, 자유가 있다. 취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맞지 않는 주변 인간관계를 벗어나 같은 것에 열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음악과 사람은 여전하다.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페스티벌이 기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자유와 일탈은 사라진다. 페스티벌 주최 측의 관객 통제가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2013 안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경향DB)



한 페스티벌에 갔을 때,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불쾌한 경험을 해야 했다. 2~3일씩 열린다는 특성상, 페스티벌의 티켓은 팔찌다. 식사나 숙박을 위해 외부를 출입할 때마다 입구에서 팔찌를 보여주고 들어가야 한다. 일종의 통행증이다. 통상적으로 스태프 앞에서 팔을 살짝 들어서 확인시켜주곤 한다. 지극히 단순한 절차다. 한데, 올해는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경호업체 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팔찌를 잡아당기는 거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명백했다. ‘팔찌 재활용’을 막기 위한 거다. 즉, 사정이 생겨서 3일짜리 페스티벌에 하루나 이틀만 가야 할 경우, 티켓값이 아까우니 다른 사람에게 팔찌를 넘긴다. 물론 올바른 일은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다. 티켓 비용은 이미 지불된 상태고 3일에 대한 권리 중 일부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니 말이다. 



또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외부 음식 및 음료를 반입금지시킨다. 환경 오염 및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게 명분이다. 명분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입장과 동시에 알 수 있다. 현장에 입점한 수많은 업체들은 예외없이 일회용 그릇과 컵을 사용한다. 쓰레기통이 넉넉지 않기에 곳곳에 남은 음식과 접시가 쌓여있다. 취중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때문에 술을 못 갖고 오게 하지만 맥주와 각종 칵테일을 물 마시듯 마실 수 있다. 밖에서보다 월등히 비싼 값을 지불할 각오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페스티벌에 입점한 업체들은 수익을 주최 측과 나눠 가진다. 따라서 관객들이 많은 음식과 술을 소비할수록, 주최 측에도 이익이다. 티켓 판매만으로는 이익을 보기 힘드니 현장에서 관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궁여지책 내지는 꼼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에 내부에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극장의 정책에 시정조치를 내린 바 있다. 페스티벌에는 적용이 안되는 걸까.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 팬들이 무대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경향DB)



많은 뮤지션들은 페스티벌의 묘미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을 꼽는다. 자기 공연이 끝나면 객석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준비해온 기상천외한 페스티벌 패션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관객이 공연자고, 공연자는 관객이 된다. 문화란 그렇게 생산과 소비의 벽을 허물어뜨리며 발전하는 법이다. 페스티벌에서는 뭘 해도 자유라는 의식이 형성될 때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생산자로의 변화를 꾀하게 된다. 한국의 페스티벌 라인업은 이제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국 페스티벌을 동경한다. 관객이 감시의 대상이요, 그나마 ‘소비의 자유’조차 온전히 주어지지 않는 지금 이곳의 모습 때문이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