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쯔위 사건의 그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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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쯔위 사건의 그림자들

석 달 전, 걸그룹 트와이스와 소속사 JYP 대표인 가수 박진영은 한 교복 광고에 함께 출연했다. 하지만 여중·고생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했다는 비난과 함께, 이 광고는 며칠 만에 사라졌다. 선생님 역할이라던 박진영은 선글라스 아래 눈을 숨기고 교복 입은 트와이스 멤버들의 몸매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처럼 묘사되었다. 실제로 트와이스의 9명 멤버 대부분은 20살이 채 안된 청소년들이다. 그중에서도 대만 출신의 쯔위는 가장 어린 16살이다.

쯔위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든 영상 하나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를 목격하면서 이 교복 광고가 생각난 이유는, 좁게는 박진영과 JYP가, 넓게는 한국의 대중문화산업이 연예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명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걸그룹이건 아이돌 스타건, 소속사 입장에서는 이들을 자사가 만들어 시장에 판매하는 상품으로 간주한다. 기획사는 이들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기능도 향상시키고, 포장박스도 예쁘게 만들지만 종종 팔리지 않아 폐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획사의 피고용인, 즉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이다. 쯔위의 경우 외국에서 온 미성년자이다.

쯔위의 사과영상은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수수한 검은 옷과 하얀 배경, 옅은 화장, 수척한 얼굴. 허리를 120도로 꺾는 인사. 도박이나 폭력 사건 때문에 사과 인터뷰하던 연예인들과 너무도 유사하다. JYP는 중국 시장을 지켜보겠다며 이 영상을 만들어 세계에 공개했다. 이 영상 안에는 “회사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JYP와 박진영에게 쯔위는 그저 “하자가 생겨 시장가치가 떨어진” 16살짜리 ‘상품’이고, 이 상품이 회사에 사과하고 있다. 더구나 이 하자는 쯔위가 자청해서 만든 것도 아니다.

쯔위 사건에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한국에서 추방된 박재범의 그림자도 있다. 10대의 무명 연습생 시절 남겼던 불평 한 마디가 뒤늦게 발견돼 문제가 되자, 박재범은 인기 정상의 2PM에서 퇴출됐고, 몇 달 후에는 소속사 JYP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소속사의 일 처리에 대한 흉흉한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메이저 기획사들의 파워가 작동되는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는 아직까지도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공장 입장에서는 큰 투자를 해서 시장에 내놓은 상품에 ‘하자’가 생겨 “눈물을 머금고” 폐기했다고 하겠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회사에 수익을 안겨주던 노동자를 해고한 후 동종 업계 재취업도 막는 차가운 현실이다.


제목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태극기와 대만 국기를 들고 있는 모습_경향DB


쯔위 사건에 겹쳐지는 또 하나의 장면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대국민담화이다. 박 대통령은 “월남이 패망할 때” 지식인과 국민, 정치인들이 무책임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한겨레신문’의 이제훈 기자가 먼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이 표현이야말로 베트남과의 외교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월남’은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 용어이기도 하다. 열여섯살 쯔위가 청천백일기를 흔든 것보다, 중소기업 사장 박진영이 적절치 못한 방식의 사과를 한 것보다, 대통령이 멀쩡한 이웃 나라를 ‘(자유)월남을 패망시킨 (나쁜) 베트콩들’로 간주한 것이 백 배 더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한국은 베트남에 있어 세 번째로 교역규모가 큰 국가이고, 베트남은 한국의 교역규모 8위 대상국이다. 참전과 대규모 전사, 민간인 학살이 얽힌 관계이기도 하다. 미묘한 한국-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아무런 감각 없이 (저우쯔위라는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서 생산한) 쯔위라는 상품을 수출하려던 박진영과 미묘한 한국-베트남 관계를 무시하고 ‘월남 패망’이라는 용어를 국내 정치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박근혜. 하나가 다른 하나의 거울이고 그림자이다.

쯔위의 청천백일기 사건과 이어진 어설픈 사과가 대만 정국에까지 영향을 준 큰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장기적으로 JYP에 큰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다. 시간이 좀 흐르면 트와이스는 다시 한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 대통령의 ‘월남 패망’ 발언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한국에 공식적인 항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그럼,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인가. 그냥 슬그머니 잊혀져도 되는 것인가.

수억명의 중국 소비자 눈치를 보는 동안, 미성년자 외국인 한 명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사라졌다. 소속 연예인들을 상품 가치로만 평가하는 한국 연예기획사들의 탐욕만 남았다. 오랜 기간 한국을 비슷한 처지의 이웃처럼 생각하던 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을 지도 모른다. 레드 콤플렉스와 수구적 냉전의식에 영합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월남 패망’이라는 용어를 쓰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에는 내상이 쌓인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씨가 쌓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이웃 나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든.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