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사형 임박’ 테이크아웃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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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사형 임박’ 테이크아웃드로잉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금 강제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집행관이 들이닥쳐 작품과 집기를 들어내고 공간의 흔적을 지워버릴지 모른다. 강제집행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이란 ‘삶-예술’의 공간을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형집행이다. 강제집행은 그곳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있었다는 흔적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분노와 냉소의 싸움 끝에 강제집행이란 절차가 완료되면, 작품들이 사라지고,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대자본의 상업공간과 스치듯 지나가는 소비대중들로 대체될 것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대한 사형집행은 공간도 죽이고, 사람도 죽이고, 예술도 죽인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1년 가까이 원치 않은 농성을 하는 최소연 대표와 예술가들은 마치 사형수의 심정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강제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를 팔아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고자 했던 어느 예술가 임차인의 소망은 어느 저질 미디어에 의해 건물주 싸이로부터 더 많은 권리금을 챙기려고 발버둥치는 사악한 행동으로 둔갑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역으로 세속적 비난과 함께 자본에 의해 공개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벽을 지나 희미하게 올라오는 아침의 햇빛을 느끼며 사수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어느 배우가 “눈은 오지 않아”라고 낭독하던 중, 창밖에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눈이 내렸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예술가들은 마술 같은 예술의 감각을 느끼기는커녕 오늘은 강제집행이 안 들어오겠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예술의 재현은 재난의 현실을 예고한 징후적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예술검열 반대와 문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_경향DB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최소연 대표가 말하듯 유배지이며, 재난의 현장이다. 강제집행의 공포에 시달리지만, ‘삶-예술’의 현장을 지키기 위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 내몰림과 쫓겨남의 폭력이 예외 없이 반복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곧 밀양 송전탑이 되고, 두리반이 곧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되는 것. 그것은 유배지이자 재난의 현장인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보편적 상황을 말해준다. 이태원-한남동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에서 바리케이드를 치는 예술가들 때문에 이곳이 특별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이다. 싸이라는 K팝 스타가 보유한 건물이기 때문에 이것이 특별한 상황인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는 예술가와 싸이의 우연한 조우가 실상은 돈의 순환 논리에 의해 얼마나 예견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에 있다. 예술과 임차인이 자본과 건물주의 먹잇감이 되는 예술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실체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재현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예술’을 통해 드러난다. 예술에서 돈으로, 감각에서 집행으로의 비극적인 전환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예술적 행위를 통해 증명되고 목도된다. 재난의 현장에서 예술은 진화하고 배운다. 강제집행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집기들을 빨간 실로 묶어내면서, 예술은 재난의 현장에 버려진 게 아니라 재난의 감각을 생성시킨다. 예술은 비로소 재난됨을 인지하며,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해체하는 초월적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의 부당한 강제집행을 당하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밤을 새우는 예술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형집행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그들은 이 처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재난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재난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자들이 되기로 각오했다. 부서지면서 낱낱이 목도하고, 사라지면서 숭고하게 재현되는 강제집행의 순간은 예술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사적인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은 너무나 아프고 끔찍하다. 강제집행의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는 없을까? 아니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형집행의 순간이 영원히 유예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정말 그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싸이가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농성하는 예술가와 만나 공생과 공존의 순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예술가와 싸이의 불편하지만 부당하지 않은 공존은 이태원-한남동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에서 삶-예술의 비무장지대를 만들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정말 불가능하다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역사적으로 기록될 가장 비극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재난의 현장이 될 것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