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신데렐라 로맨스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신데렐라 드라마가 여주인공을 빈곤으로부터 구원하는 재벌 남주인공의 순정을 강조했다면, <시크릿 가든>은 사랑으로도 넘을 수 없는 둘 사이의 계급 장벽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결혼은 못하니 “세컨드”라도 되어달라는 재벌 캐릭터는 너무 속물적이어서 오히려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는 결국 남녀의 몸이 뒤바뀌는 판타지 기법을 동원하고 나서야 신데렐라 로맨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신데렐라 드라마에서조차 더욱 강력한 판타지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계급 역전이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시크릿 가든>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신데렐라 로맨스는 이러한 현실의 증후를 공유한다. 달리 말하면 계급양극화 시대의 현실과 신데렐라 판타지의 점점 심해지는 괴리가 만들어낸 균열의 증상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재벌 남주인공에게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이 폐소공포증을 앓은 것처럼 <보스를 지켜라>의 차지헌(지성)은 공황장애, <청담동 앨리스>의 차승조(박시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군의 태양> 주중원(소지섭)은 극심한 난독증으로 괴로워한다. 이제는 재벌이 ‘제정신’이 아니어야 신데렐라 로맨스가 가능해진다. 아들과 하층계급 여성의 사랑을 반대하는 재벌 부모들이 뜻을 거스르는 아들에게 ‘미쳤군’ 운운하던 이 장르의 관습적 대사가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그 극단적 사례가 최신 트렌드인 다중인격 로맨스다. 현재 방영 중인 SBS <하이드 지킬, 나>와 MBC <킬미, 힐미>에서는 각각 이중인격, 7중인격 재벌이 등장한다.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재벌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넘어 인격이 분리되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그나마 신데렐라 로맨스를 꿈꿀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예컨대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현빈)은 피고용인들을 내키는 대로 해고하는 악덕 고용주다. 재벌의 현실적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한 그는 기존 신데렐라 로맨스의 ‘백마 탄 왕자님’ 캐릭터인 또 다른 인격 로빈으로 변하고 나서야 가난한 장하나(한지민)와 사랑에 빠진다.
MBC 수목극 <킬미, 힐미> (출처 : 경향DB)
이 같은 시대의 증후는 신데렐라 여주인공들에게서도 뚜렷하다. 본래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는 여성이 부유한 남성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얻는 대가로 노동을 제공하고 주체성을 포기하는 이야기다. 양극화 심화의 현실은 이 장르에서 신데렐라들의 노동조건이 한층 악화되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벌들의 다양한 병명과 같이 여성들의 노동조건도 구체적인 호칭으로 노동의 강도를 표현한다.
가령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이 비정규직 스턴트우먼이었듯이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은 ‘88만원 세대’ 계약직 비서,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문근영)은 ‘삼포세대’ 인턴 디자이너, <주군의 태양> 태공실(공효진)은 야간 청소용역 노동자였다. 그녀들의 ‘갑’은 모두 재벌 남주인공이다. 재벌의 정신질환 증상이 심해질수록 신데렐라의 노동강도가 세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하이드 지킬, 나>와 <킬미, 힐미>에 이르면, 신데렐라들은 거의 감정노동자에 가까워진다. 장하나는 구서진이 인격 분리 징후로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킬미, 힐미>의 오리진(황정음)은 정신과 의사라는 전문적 능력을 지녔지만 차도현(지성)과의 비밀주치의 계약을 통해 거의 24시간 붙어 지내며 그의 7중인격을 두루 보살피는 고강도 노동을 담당한다. 어느 날 오리진이 밤새 차도현의 다섯 인격과 모두 만나며 피로에 지쳐가는 에피소드는 그러한 감정노동의 극한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양극화 심화 시대의 어두운 증상들이다. 왕자는 아프고 신데렐라는 피곤하다. 신데렐라 판타지에마저 피로와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로, 이 시대 계급 장벽의 상처는 깊고도 짙다.
김선영 | 드라마평론가
'TV 블라블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비평]내 딸을 부탁해 (0) | 2015.04.02 |
---|---|
[문화비평]‘풍문으로 들었소’의 놀라운 풍자 (0) | 2015.03.29 |
[문화비평]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진화했을까 (0) | 2015.01.22 |
[문화비평]우리 사회의 복원지점은 어디인가 (0) | 2015.01.13 |
[문화비평]‘왔다 장보리’ ‘전설의 마녀’ 막장드라마의 진화인가 (0) | 2014.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