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우리 사회의 복원지점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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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우리 사회의 복원지점은 어디인가

SBS 월화드라마 <펀치>는 3년 전 <추적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박경수 작가의 최신작이다. <추적자>는 2012년 대선 정국에 등장해 부패한 대선 후보와 맞서는 소시민의 이야기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냈다. 다음 해에 발표한 <황금의 제국>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경제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탐욕에 눈먼 자들이 재벌기업의 총수 자리를 차지하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검찰 세계를 정조준 한 <펀치>에 이르러 박경수 작가는 정치, 자본, 법이라는 한국 사회 주요 지배 권력의 속성을 해부하는 이른바 ‘권력 삼부작’을 완성하고 있다.

세 작품이 일종의 연작 성격을 띤다는 것은 <펀치> 주인공 박정환(김래원)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황금의 제국> 주인공 장태주(고수)의 결말에서부터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황금의 제국>에서 장태주는 정환과 같은 법대생이었지만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으로 꿈이 좌절되자 인생역전을 꿈꾸며 부동산 개발업자로 진로의 방향을 뒤튼 인물이다. 그 길 안에서 맛본 돈의 달콤한 유혹은 그를 제어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에 태워 끝내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이끌었다.

<펀치>의 전개는 장태주처럼 성공의 정점을 향해 초고속 질주하던 박정환이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는 데서부터 본격화된다. 욕망을 멈출 수 없었던 정환은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수술대 위에 눕고 수술 실패로 코마 상태에 빠진다. 그가 성공을 위해 저질러왔던 수많은 비리를 알고 있는 동료 검사이자 전처 신하경(김아중)은 만약 정환이 깨어난다면 다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듯 다시 일어난 정환의 삶은 말하자면 장태주가 죽음에서 돌아와 얻은 또 한 번의 기회와도 같다. <펀치>의 상징적 키워드가 “복원지점”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환의 뇌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뇌손상으로 인한 섬망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복원지점”이 있는데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환각이 펼쳐진다고. 그 말대로 정환을 찾아온 섬망증은 그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를 드러낸다. 성공을 꿈꾸며 비리 검사 이태준(조재현)의 손을 굳게 잡았던 날이었다. 그로 인해 출세를 보장받았지만 사랑하는 아내, 딸과는 멀어지고 권력욕으로만 가득 차게 된 그때를 정환은 돌이키고 싶은 것이다. 박경수 작가는 늘 인물들의 삶의 항로를 뒤바꾼 윤리적 선택의 순간에 대해 그려왔다. 이득을 얻는 비윤리적 삶과 아무 이득 없는 윤리적 삶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가령 <추적자> 마지막 회에서 부패한 정치인을 심판하기 위해 투표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놀라운 승리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또는 <황금의 제국>의 인물들이 탐욕의 괴물이 되고 마는 것처럼. 한 사회의 구조라는 것은 결국 그와 같은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박경수 작가가 끈질기게 “복원지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의 선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다. 너도 나도 “자본의 포커판”에 동참했던 <황금의 제국> 시절에는 수많은 이들이 철거로 밀려났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으며, 대량 해고사태가 벌어졌다. 그 비극에 눈감자 이번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실제 <펀치> 첫 회에서는 그 참사를 연상시키는 어린이집 버스 사고가 묘사된다. 전복으로 대형 참사가 될 뻔한 사고의 원인은 원가절감을 노리고 불량 부품을 사용한 자동차회사에 있었다. 그 회사는 부도 직전 수조원에 이르는 자금 도피로 노동자 수천 명의 해고와 열 명의 죽음을 불러온 곳이기도 하다. <펀치>는 박정환이 출세를 위해 세탁해준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를 출발하며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불러와 다시 한번 경고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아예 복원력을 상실하기 전에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하자고.


김선영 | 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