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우리 시대 특권층의 속물의식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특히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귀족의식과 특권을 대물림하려는 계급 세습의 욕망을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온 법조가 명문 출신이자 국내 최대 법률회사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가 자신의 “제왕적 권력”을 다시 아들 한인상(이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내용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드라마는 한정호가 대표하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성을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풍자한다. 하나는 특권층의 기만적이고 모순적인 언어를 통해서요, 또 하나는 그들의 이중성을 관전하는 일반 시민들의 비평적 언어를 통해서다. 전자가 한정호의 가식적 “워딩”으로 대표된다면, 후자는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뒷담화’로 나타난다.
우선 한정호의 언어를 살펴보자.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모순성은 늘 스스로에 의해 폭로된다. 밖에서는 “요즘 세상에 귀족이 어딨습니까, 다 시민이죠”라면서도 집에서는 금세 얼굴을 바꿔 “요즘은 직급이니 재산이니 뭐니 해서 죄다 에스컬레이팅돼서 도무지 변별이 안된다”고 ‘누대의 귀족’으로서 우월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한정호다. 그의 아내 최연희(유호정)도 마찬가지다. 유명 역술인 좀 소개해달라는 친구의 말에 “법리를 다루는 집안에서 어떻게 미신을 믿느냐”며 고상한 척하다가 이내 부적주머니를 들키고 만다.
이처럼 본색이 금방 들통 나는 것은 그들이 결코 “기민”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캐릭터 소개를 보면 한정호는 “논리의 제왕이자 의전의 달인”, 최연희는 “재색을 겸비한 최고의 귀부인”으로 설명된다. 그럼에도 쉽게 자기모순을 드러낸다는 것은 속물적 욕망에 비해 내면이 그만큼 얄팍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 부부는 늘 서로에게 ‘정신 차리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예측이나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치면 울음을 터뜨리는 ‘유리 멘털’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토록 ‘남의 시선’에 연연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정호의 탈모와 최연희의 주름 걱정은 그 내면 없는 존재들의 일차원적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풍자는 이 지점에서 더욱 강화된다. 한정호 부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통해 남을 의식하는 그들의 얄팍한 내면을 한층 효과적으로 풍자하는 것이다. 그 비평적 시선의 주체는 한정호의 구중궁궐 같은 집에서 소위 ‘가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한정호 부부의 가면은 가문의 명예를 이어야 할 장남 인상이 서민 출신 서봄(고아성)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충돌할 때마다 ‘가신’들의 관전평이 뒤에 따라온다. 특히 한정호 부부가 제일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의 순간에는 반드시 이들의 시선이 개입하여 그들의 치부를 강조하거나 본심을 대신 읽어주며 풍자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예컨대 가정출산 에피소드에서 정호 부부가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면서도 은밀히 주치의에게 친자 확인을 의뢰하며 “비밀 엄수”해달라 당부하면, 그 뒤에 ‘가신’들이 모여 “친자 확인 검사한다는데요”라며 재차 강조하는 식이다. 봄과 인상 앞에서 관계를 인정하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봄의 부모에게 수십억원의 ‘포기 각서’를 제시한 사실이 밝혀지자, 그 각서를 다시 한번 훑어보는 ‘뒷담화’로 다시 한번 정호 부부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봄의 부모를 집에 초대했을 때 기품 있는 태도로 서울을 떠날 것을 제안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인권침해 수준”이라고 일갈하는 것 또한 이들의 비평적 몫이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출처 : 경향DB)
이 시선의 더욱 중요한 풍자적 효과는 그것이 한정호 부부의 이중성을 밝히는 걸 넘어서 ‘명문’이라는 그들의 자부심 자체가 허상임을 밝힌다는 데 있다. 부부가 거주하는 한옥을 중심에 놓고 또 다른 양옥이 둘러싸고 있는 기괴한 저택의 구조부터가 그 자체로 사극의 세트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풍자신은 정호 부부의 불화를 바라보던 독선생 경태(허정두)가 “중전마마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고 비꼬는 장면이다. 그 연이은 장면에서 정호가 그 말 그대로 연희에게 “당신은 이 집안의 모후, 나의 중전”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그들의 “귀족 코스프레”적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 특권층의 근본 없는 귀족 놀이야말로 “풍문” 그 자체인 듯하다.
김선영 |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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