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왔다 장보리’ ‘전설의 마녀’ 막장드라마의 진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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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왔다 장보리’ ‘전설의 마녀’ 막장드라마의 진화인가

올해 방송 결산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중 하나는 MBC <왔다 장보리>다. 선한 여주인공과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또 다른 여성의 대결을 그린 이 드라마는 진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악역의 강렬함과 그에 비례하는 대중들의 징벌적 욕망을 부추겨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뒀다. 그 뒤를 이어 현재 방영 중인 <전설의 마녀> 역시 더 억울한 주인공과 더 힘센 악역을 내세워 약자들의 복수심을 자극하며 화제를 모아 제2의 <왔다 장보리> 신화를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두 주말극의 연이은 흥행이 시사하는 의미다. MBC는 오랫동안 드라마 왕국으로 불려왔다. 그러한 MBC의 호칭이 주말드라마 왕국으로 새롭게 바뀐 현상 자체가 어느덧 나이 들고 고루해진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왔다 장보리>와 <전설의 마녀>의 연속 흥행은 그 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성공비결의 핵심은 MBC 드라마의 강점이던 트렌디드라마 흥행공식들을 통속극의 장으로 끌어들여 문어발식 갈등 확장을 꾀한 데 있다.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상류층의 후계 다툼, 악역의 엽기적 범죄 행각, 복수, 기억상실,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등 ‘막장드라마’의 필수 조건을 다 갖추고, 여기에 전문직 드라마, 로맨틱코미디, 미스터리 등의 여러 장르적 요소들까지 마구잡이로 뒤섞었다. 최신 트렌디 드라마의 특징인 복합장르를 막장드라마에 적용한 셈이다.

가령 <왔다 장보리>는 한복 장인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의 경쟁이라는 전문직 드라마적 요소가 주요 스토리의 한 축을 차지했고, 출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은 기존 통속극의 단순 장치가 아니라 범죄수사장르물을 보는 듯한 미스터리 구도의 모양새를 취했다. <전설의 마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제빵을 소재로 한 전문직 성공기, 출생의 비밀에 대한 단서를 하나씩 제공해 퍼즐처럼 풀어가는 추리 구조에 영화 <하모니>, <7번방의 선물> 등을 연상시키는 교도소 배경의 휴먼드라마, 집단 주인공을 내세운 앙상블 드라마 형식까지 더했다. 기존의 진부한 흥행공식을 안이하게 재탕하는 막장드라마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는 시도다. 그만큼 제작진의 공이 더 들어가는 작업인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과연 막장드라마의 진화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들은 통속극의 범주를 넘어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려 새로운 흥행공식의 조합을 찾았다. 영리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 공식들을 합하는 과정에서 드라마의 기본인 개연성을 무시하고 인간에 대한 얄팍한 묘사로 일관하는 태도는 기존의 막장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더 많은 갈등 요소를 채워 넣느라 원칙과 인간드라마는 더욱 축소됐다. 실제로 <왔다 장보리>는 여러 장르적 시도를 끌어들였으나 결국엔 연민정(이유리)이라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악녀의 기행에 의존했고, <전설의 마녀>는 장례식과 교도소까지 시트콤의 배경으로 이용하며 인간을 희화화했다.

요컨대 이 둘의 흥행 성공은 막장드라마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오해하거나 잊어왔던 중요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막장드라마의 핵심은 표면적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이야기든 해도 괜찮다는 정신과 태도에 있다는 것, 그리하여 한국드라마의 시청률 만능주의가 낳은 괴물이 바로 막장드라마라는 사실 말이다.


MBC드라마 '전설의 마녀'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지상파 드라마의 침체를 말할 때도 그렇다. 위기론은 늘 시청률 문제로 귀결된다. 수많은 드라마가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위기의 증거로 거론되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최고작으로 치켜세워진다. 시청률 집착이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평가 기준에는 관심이 없다. <왔다 장보리>와 <전설의 마녀>가 다시금 증명한 재미 우선주의는 곧 다른 막장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년에는 어떤 진화된 괴물을 목격하게 될까. 드라마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날로 희미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김선영 | 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