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각 방송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곧바로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는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관련된 예능프로그램들이 명절 기간에 좋은 반응을 얻어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고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아빠를 부탁해>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은 평소 바쁜 일정 때문에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다. 특히나 연예인 아빠와 딸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한 강석우, 이경규, 조재현, 조민기는 모두 쉰을 훌쩍 넘긴 중년 연예인들이다. 바쁘고 화려한 청춘시절을 지나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출가를 준비시켜야 하는 아빠들이다. 어느덧 성년이 되어 장성한 딸을 보면서 자신의 뒤를 돌아보곤 하지만, 요즘 ‘딸 바보 아빠’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딸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빠를 부탁해>는 제목만 놓고 보면 딸의 시점에 서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바쁘고 무뚝뚝한, 그리고 아주 유명한 아빠를 향한 딸들의 숨겨진 감정을 보여준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늘 우리 곁에 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대한 가족의 난감한 상황을 그렸다면 <아빠를 부탁해>는 늘 부재해 있던 아빠의 갑작스러운 현존에 대한 딸의 묘한 감정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무뚝뚝한 아빠나 자상한 아빠나 유명 연예인들을 아빠로 둔 딸들에게는 난처하고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아빠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딸들에게 유명 아빠는 소박한 공원 벤치보다는 불편한 안락의자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들은 모르긴 몰라도 딸들이 훨씬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유명한 아빠들의 아우라에 눌려 있는 딸들은 아빠를 위해 자신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들 출연은 정말 아빠를 위한 것일까?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경규와 강석우의 두 딸인 이예림과 강다은은 모두 아빠의 모교인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재학생이다. 조재현의 딸인 조혜정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조민기의 딸 조윤경은 미국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아빠의 입을 통해 아나운서를 희망하는 걸로 알려졌다. 모두 방송 연예인 지망생들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노골적인 딸들을 위한 연예인 입문 프로그램으로 보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예계 데뷔가 매우 절실한 시점에 있는 20대 초·중반의 딸들은 이미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방송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이들은 엄청난 방송 분량으로 노출되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아빠를 부탁해’가 아니라 ‘내 딸을 부탁해’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딸의 마음을, 딸이 아빠의 마음을 알아나가는 진솔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화사한 포장에 불과하다. <아빠를 부탁해>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딸을 위한 ‘아빠의 청탁’, ‘아빠에 의한’ 딸의 일자리 창출에 공모하는 프로그램이다. 겉으로 보면 아빠와 딸의 관계 회복을 위한 보편적 감정을 호소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넉넉한 가정환경을 꾸리고 있는 가족관계의 행복한 재생산, 혹은 아빠의 연예권력을 딸에게 물려주려는 노골적인 인정투쟁 같아 보인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부유한 살림살이들, 소소하고 평범한 듯하나, 왠지 뭔가 잘 누리고 있는 그들만의 일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SBS '아빠를 부탁해'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내 딸을 부탁해’라는 불편한 요청은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본인이 총장으로 있던 중앙대에 30대 초반인 딸의 교수 채용을 부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소위 ‘땅콩 회항’으로 구속된 조현아의 경우도 부친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잘못된 권력의 증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무부 직원 채용, 대형 로펌 및 대기업 직원 채용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른바 ‘내 딸을 부탁해’는 가족관계의 회복을 위한 사랑의 슬로건이 아닌 부모의 권력을 대물림시키는 불평등의 기호가 아닐까?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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