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사라지는 ‘텍스트’들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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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사라지는 ‘텍스트’들의 함의

‘텍스트’라는 단어는 대중문화나 방송영역 내 특정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의 역할을 논할 때 종종 활용된다. 주지하다시피 텍스트는 일련의 의미와 가치를 특정한 교직으로 조밀하게 엮어낸 대상을 일컫는 용어이자, 그러한 구현물이 발휘되는 사회 내 다기한 쓰임새와 의미작용의 함의를 진단할 때, 근간이 되는 단위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텍스트 비평의 갈래 속에, 언론이 제시하고 조명하는 일련의 사안을 상세하게 탐구하는 매체비평이 포함된다. 매체비평은 뉴스의 생산이나 언론이 주도하는 특정 사회정치적인 이슈의 조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수용자들에게 제공되는지의 특성과 역할의 맥락성 그리고 명과 암을 세밀하게 진단하는 특화된 작업이다. ‘비평’과 ‘검증’을 뜻하는 크리티시즘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판단을 내리고, 잘못을 가려낸다(faultfinder)라는 압축적인 어원을 갖고 있듯이,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언론의 주요 생산물인 기사와 뉴스 속 논조와 방향성 그리고 문제점을 밝혀내고 지적해내는 소임을 발휘한다.

매체비평은 언론 상호 간의 교차진단과 비평작업 그리고 매체들의 활동상을 재귀적으로 진단한다는 측면에서, 저널리즘이 지향하는 비판성과 공공성 그리고 균형성과 책무성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동시에 바로 그러한 만만치 않은 그리고 ‘불편한’ 역할로 인해, 특정 주체들에게는 ‘성가시고’, 경계의 대상이 되며, 공박을 받게 되는 존재로 설정되기도 한다.

며칠 전 13여년간에 걸쳐 매체비평의 맥을 이어 온 KBS의 <미디어 인사이드>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지상파를 포함해 방송사 중에서 그간 유일하게 기능해 온 주요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사라지게 된 것은 매우 씁쓸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시대상황을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적 징후라는 판단이 든다.


미디어 인사이드_kbs


<미디어 인사이드>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매체들의 활동상과 제시되는 이슈에 관한 비교적 다양한 진단과 해설을 제공해왔으며, 이러한 작업은 제 몫을 못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지형 속에서, 매우 유의미한 모습을 발현해온 사례이기도 하다. 자사의 주요 프로그램 진단과 함께, 타 매체의 활동, 언론이 매개하는 공적 이슈를 조명하는 매체비평의 생산자들이 그간에 대면해온 어려움에 관해 필자 또한 숙지하고 있기에, 폐지 소식을 접하면서 심경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그간에 KBS는 우리 사회 언론의 중심축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공영’방송이라는 역할에 미달하며 부족한 면모를 보여 왔고, 저널리즘의 소임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역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총선 전까지의 상황을 보아도 KBS는 균형추가 상실되고, 특정 정치적 이해관계에 치우친 보도, 시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주요 정치사회적 사안과 관련해 숙고되지 못한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였다.

양대 공영방송의 주요 시사 관련 프로그램들은 눈에 띄게 순치되고, 결기를 잃었으며, 균형성이 탈각돼 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과잉된 정치의식과 목적성을 숨기지 않고, 보도에 있어 편향된 스탠스와 흥분하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전방에 배치한 종합편성채널(종편)의 행태는 여전히 거침이 없고, 저널리즘의 역할과 규범에 심각한 암운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의 상황 속에서, 소수의 프로그램들이 방송저널리즘의 책무와 정상화된 기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그러한 소명과 관련하여 담당할 몫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현실은 우울하다. 기억하는가? <돌발영상>은 한때 기민하게 뉴스의 ‘이면’을 보여주며, 언론의 순기능을 발휘했지만, 그 프로그램도 잃었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매체들의 역할과 언론영역의 주요 변화상과 쟁점을 진단해주며, 저널리즘이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공익과 정보 그리고 진전된 알권리를 매개해주던 <미디어 인사이드>도 이제 ‘사라지게’ 된다.

상당 기간 축적돼 온 제도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기레기’라는 세간의 평가와 냉소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협소한 이해관계와 눈치보기로 표류하고 사라지게 되는 일은, 한국호에 승선한 우리 모두에게 현 상황을 우려스럽게 돌아보게 하는 시금석이자 뼈아픈 전갈이다.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문제를 곱씹고 행동으로 옮기는 집합적 자성과 시민들의 능동적 대응이 요구된다. 더 늦기 전에. 더 퇴보하기 전에.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