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 문화평론가
요즘에는 특정 상품이 아니라 기업 자체를 홍보하는 이미지 광고가 많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착한 일은 기업이 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이를 테면 삼성은 섬마을에 보건진료소를 세워 주민을 돌보고, 가난한 대학생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준다. 포스코는 의료구호단체 의사들이 아프리카 오지까지 기차를 타고 들어가 봉사할 수 있도록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유한킴벌리는 시니어 채용에 앞장선다. ‘시니어가 자원’이기 때문이다. 모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한 광고들이다.
이러한 광고 효과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2008년 참여연대가 주최한 ‘CSR 노동지표 개발을 위한 토론회’에서 임운택 교수가 발표한 ‘CSR에 대한 노동자 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100명 중 58.7%가 ‘사회적 책임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기업’으로 삼성을 꼽았다. 주지하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오로지 광고 때문이다. 삼성은 CSR 광고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경향신문DB)
포스코 광고는 아전인수격이다. 포스코가 아프리카에서 철도를 깐 것은 봉사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해외수익사업일 뿐이다. 유한킴벌리의 광고도 마찬가지. 유한킴벌리는 작년에 요실금 팬티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니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유한킴벌리는 제품의 판매 촉진 인력을 시니어를 채용해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유한킴벌리가 시니어를 채용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판매와 임금 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홍보물 중에는 기업들이 후원하는 자원봉사 영상도 있다. KT의 ‘IT 서포터즈’, SKT의 ‘써니’, LG전자의 ‘Let’s Go 봉사단’ 같은 대학생 자원봉사 영상들이 그렇다. 기업은 이들의 봉사활동을 자사 이미지 개선에 활용한다. 그러나 어떤 직원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기업을 위해 평균 이하의 급여를 받고 일하거나 어떤 대학생이 무임금으로 일한다면, 그것은 직원이나 대학생의 박애주의이지, 기업의 박애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직원이나 대학생이 기업에서 ‘사회적 책임을 구매’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적반하장이다. 기업은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시혜를 주는 양 행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프로그램에도 지원자가 넘쳐난다. 무료로 봉사하겠다는 데에도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요즘에는 자원봉사도 취직을 위한 스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노동력을 공짜로 써달라고 애원하게 된다. 이마저도 퇴짜당하는 현실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기업이 후원하는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는 데에는 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높은 청년 실업률, 경제 양극화가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은 정설이다. 특히 기득권, 부자,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이 커진다. 그것은 기업의 활동 여건이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경제 양극화 문제에는 기업의 책임도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움직이는 기업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불안 요인을 관리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이러한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높은 실업률과 그로 인한 불만을 기업 활동의 틀 안에서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친기업적 정서와 사고를 내면화하게 된다. 높은 실업률에도 변변한 사회적 저항이 청년들에게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 같은 프로그램도 한 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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