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노래 값이 많이 올랐다. 이제 노래는 음반이나 CD가 아니라 음원 상태로 거래되는 것이 대세인데, 그 음원 값이 40% 이상 인상된 것이다. 모든 물가가 올랐으니 이것도 오르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에 음악 애호가들의 불만이 크다. 가격을 올린 이유가 음악을 만든 사람들한테 수익을 더 많이 배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소비자가 더 지불하게 된 가격에 비해 창작자의 몫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원래 음악을 사고파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이나 문학 같은 작품은 어쨌든 물건으로 남으니 돈을 주고 물건을 받으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상품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빼면 다른 거래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음악은 한 번 울리고 나면 사라지는 소리라서 사고팔기가 마땅치 않다. 1877년 에디슨이 녹음기를 발명하기 전까지 소리를 사고판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품이었던 역사가 짧아서일까, 아니면 상품의 속성이 여전히 모호해서일까. 음악 시장은 아직도 불안정하고 불공평하다.
경향신문DB
일단 가격을 결정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노래 하나가 얼마라야 적당할까? 새로 바뀐 규정에 따르면 한 곡을 다운받아 평생 가지고 있는 데는 600원이고, 한 번 듣기만 하는 데는 12원이다. 대여 서비스도 있다. 7000원 정도를 내면 노래 100곡을 한 달간 빌려준다. 덤핑도 한다. 종량제라는 것인데, 수십곡을 한꺼번에 묶어서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정액제라는 것도 있다. 한 달에 얼마씩 정해진 돈을 내면 무한정 듣게 해주는 식이다. 100여년 전만 해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음악이 첨단 정보기술(IT) 환경에 이토록 잘 적응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단지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모든 음악상품의 가격이 똑같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상품들은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음원은 음악이 좋든 나쁘든 모두 값이 같다. 음악이 좋으면 많이 팔리기도 하겠지만, 좋은 음악이라고 다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다. 가방이든 자동차든 명품은 조금만 만들어 꼭 사겠다는 사람한테만 비싸게 팔고 있다. 음원시장에서는 명품의 값을 쳐주지 않으니, 그것을 만드는 장인이 설 자리가 없다. 새로운 음악적 실험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기업들은 서로들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야단들인데 정작 가장 첨단이어야 할 예술이 뒷걸음치고 있지 않은가.
소비자들이라도 좋은 음악을 선별해서 구매한다면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제작자가 보상받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도 혼란스럽다. 쏟아지는 노래의 홍수 속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흔히 남이 좋다는 것을 좇아서 듣는다. 즐겨 클릭하게 되는 것이 음원사이트의 차트나 추천곡인데 여기서도 상술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 많이 다운로드된 곡이 좋은 곡이라는 보장도 없고, 음원사이트 대부분은 노래의 질을 꼼꼼히 따져 추천하기보다 자기 회사의 이해관계에 맞는 음악들을 추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술이다. 대형마트들이 자사의 기획상품들을 눈에 잘 띄고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진열하는 것과 똑 닮았으니.
노래의 완성도는 무시한 채 대형 유통사에 의해 좌우되는 음원시장이 우리 음악의 경쟁력을 망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산업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작곡가와 제작사들의 기를 살려 다양하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게 해야 한다. 지금 음악시장의 현실은 대기업에 의해 죽어버린 골목상권의 데자뷰이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제 음악에서마저 골목상권은 없어질 것이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대형마트만 있는 세상,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두부 한 모 쑥쑥 썰어서 물이 떨어지는 채로 신문지에 싸주던 우리 골목의 구멍가게가 그립다. 비록 투박했지만 설탕 듬뿍 발라진 그런 꽈배기는 우리 동네 빵집에만 있었다. 골목상권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음악 골목만은 죽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