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어벤져스2’의 손쉬운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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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블라블라

[문화비평]‘어벤져스2’의 손쉬운 장사

<어벤져스2>가 외국영화 사상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사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들은 어떤 성적표를 받았을까? <어벤져스2>와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중에서 누적관객 수가 그 다음으로 많은 영화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으로 총 14만여명을 동원했다. 나머지 영화 <약장수> <아리아> <세레나> <땡큐 대디> <반짝이는 박수소리> <더 딥 블루 씨> 중에서 누적관객 5만을 넘긴 영화는 하나도 없다. 현재 <어벤져스2>와 맞서 그나마 선전하는 국내 영화는 김혜수 주연의 <차이나타운>과 <악의 연대기>로 각각 5월 셋째주 기준 143만명과 73만여명의 누적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어벤져스2>는 한국 멀티플렉스의 황소개구리가 되었다.

상업적 경쟁력이 높은 할리우드 영화라 해도 특정 국가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벤져스2> 외에 2009년 <아바타>(1330만명), 2013년의 <겨울왕국>(1029만명), 2014년의 <인터스텔라>(1027만명)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홍보도 알아서 잘해주고 스크린도 마음대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바타>의 개봉일 스크린 수는 총 912개였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스크린 수였다. 미국을 제외하고 <겨울왕국> 흥행 수입은 일본 다음으로 높았고, <인터스텔라>는 중국 다음으로 높았다. <어벤져스2>를 포함해 <아이언 맨> <트랜스포머>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요즘 한국에서 먼저 개봉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 관객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충성도가 높으며, 단기간 내 고속 흥행이 가능해 전 세계에 홍보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즘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노나는’ 장사를 하고 있다. 하반기에 <쥬라기월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같은 할리우드 대작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올해가 아마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래 할리우드 영화의 최고 흥행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닥터 조’ 역으로 나온 한국배우 수현 (출처 : 경향DB)


할리우드 흥행 전성시대를 여는 데 산파 역할을 하고 있는 <어벤져스2>의 노나는 장사는 더욱 각별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사상 서울이 처음으로 주요 촬영장소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애초 이 영화의 흥행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관객들 대다수는 서울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졌을까 궁금해하며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서울시는 <어벤져스2>의 성공적 촬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알다시피 서울시는 <어벤져스2>의 현지 촬영을 위해 교통을 통제하면서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는 촬영에 드는 제작비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십억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극장은 <어벤져스2>의 흥행 독주를 위해 스크린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어벤져스2>만 3주 전에 예약을 열어주고, 그래서 예매율이 역대 최고인 96%, 사전 예매 티켓 수가 95만장을 기록했다. 세계 최초 개봉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한 배우들에 대한 미디어의 경쟁적 환대와 아낌없는 홍보성 보도는 <어벤져스2>의 흥행가도에 제트 엔진을 달아주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개봉 주말 3일 동안 234만명이란 초유의 관객을 동원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의 보도에 따르면 개봉 첫주 토요일 <어벤져스2>가 극장에 상영된 횟수는 총 1만18회였다. 이는 전국 극장에서 상영된 1만4688회의 68.2%에 해당한다. 촬영에서 상영까지 <어벤져스2>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은 통 큰 글로벌 마인드의 감정보다는 문화적 미국화의 내면적 욕망을 드러낸다.

솔직히 나는 <어벤져스2>의 노나는 장사에 배가 아프다. 이 영화가 동시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의 씨를 말릴 정도로 재미의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글로벌 관광효과를 노리며 이 영화에 각종 편의와 거액을 지원한 서울시의 문화적 판단도 지나쳐 보인다. 한 영화가 이렇게 독점할 수 있도록 아무런 제어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한국 영화산업의 지나친 시장친화적 유통 불공정 정책에도 화가 난다. 이건 애초부터 공정한 게임도, 합리적인 경제논리도 아니다. <어벤져스2>가 노나는 장사를 하도록 열심히 밀어줘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서울의 관광 특수효과?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 강화? 아니면 이 난세에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는 시민적 자각? <어벤져스2>의 노나는 장사가 씁쓸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기대가 단지 우리만의 망상이고, 우리에게 특별히 남는 것 없이 한국 영화는 더 골병이 들 것 같아서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