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은경·사진 김문석 기자 yama@kyunghyang.com
ㆍ제주 4·3사건 다룬 영화 ‘지슬’ 제작·연출
ㆍ“그 역사가 기쁨이 될 순 없어”
오멸 감독(42)이 처음 시작한 예술은 한국화였다. ‘정말’이라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종이 살 돈도 벌지 못했다. 당시 그는 1400원짜리 종이를 썼다. 대학(제주대 미술학과) 3학년 때는 붓을 살 형편이 안돼 친구가 집에 가면 그 붓으로 밤새 그림을 그렸다. 연극도 했다. 이후 그는 극단 자파리연구소를 세워 연극에 몰두했다. 2011년 <오돌또기>로 서울어린이연극상 4관왕을 차지했다. 일본인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지부를 세워 순회공연을 마련해줬다. 하지만 단원들에게 출연료는 못 줄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오멸 감독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림도 연극도 아닌 영화였다. 그의 4번째 장편영화 <지슬>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을 시작으로 잇달아 영화제를 휩쓸었다. 세계적인 독립영화축제인 미국 선댄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도 대상을 탔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이었다.
“미술이나 연극은 열심히 해도 화제를 끌어내지는 못했어요. 영화는 5년 동안 고작 4편을 했는데 이렇게 화제가 됐어요. 하지만 기초 예술의 밑천이 없었다면 <지슬>은 못 찍었을 겁니다. (명성을) 얻었지만 토양은 여전히 척박하죠. 그래서 영화는 매력적이라기보다 얄미울 때가 많죠(웃음).”
오멸 감독은 얄밉다고 표현했지만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을 찍은 과정을 들어보니 ‘열심히’라는 표현을 넘어선 듯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을 연출한 오멸 감독은 “영화 흥행이 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며 “그 역사는 기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제주 7개 스크린 개봉… 전회 매진 ‘흥행 돌풍’
희생자들도 평범한 사람… 주민을 배우로 캐스팅
희생되는 장면 촬영 땐 제사처럼 지방 쓰고 진행
- 원래 제목은 돼지를 뜻하는 <꿀꿀이>였는데 감자를 의미하는 <지슬>이라고 바뀌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4·3사건 당시 토벌대는 주민들을 학살하고 본보기로 보여주려고 시신을 치우지 않았다. 살아남은 주민이 피신해 텅 빈 마을엔 돼지만 남았다. 굶주린 돼지들이 돌담을 허물고 시신을 먹었고, 부쩍 살이 오른 돼지를 토벌대가 잡아먹었다는 게 실제 사건이다. 현실적으로 돼지 섭외가 힘들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복순이’라는 돼지를 찾았는데 주인 할머니가 밭일을 가야 해서 촬영장에 데리고 올 사람이 없었다. 제목이 바뀌었지만 사건은 간접적으로 묘사됐다.”
- 출연자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순덕이라는 이름을 영화에 쓰려 했는데 주변에서 김순덕씨를 추천해줬다. 농사 짓다가 노래패를 하고 있는 생계형 문화인인데 얼굴이 순해서 극중 순덕이 엄마 역으로 적격이었다. 용필아저씨 역의 양정원씨는 포크 가수다. 병호 역으로 나오는 손욱씨는 양정원씨 콘서트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인연으로 만났다. 본업이 보일러공이라 극장 수도 파이프 고장난 것도 고쳐줬다. 요즘엔 양정원씨가 손욱씨를 공연에 잘 안 부르는데(웃음), 계속 어울려 지내다 같이 영화를 찍게 됐다. 영화에서 ‘삼촌 안아줘’라고 하는 아역배우는 손욱씨 아들이다. 순덕이 역의 강희씨는 부동산업을 하는 친구가 소개시켜줬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이라 연기 경험이 없었다. 노출이 있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할 수 있다’고 했다.”
-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는 이유는.
“영화에는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없다. (4·3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비전문 배우들이 더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 실제 사건을 다루다보니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첫 촬영을 하는 날 크레인이 무게 때문에 쓰러지면서 초가집에 걸리는 위험한 사고가 났다. 다행히 위기는 잘 넘겼지만 어쩌면 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여년이 넘은 4·3사건의 무게가 크레인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촬영을 접고 숙소에서 뭐가 잘못됐나 고민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나 태도가 잘못돼 짓눌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제사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찍으면서도 지방을 안 썼더라.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지방을 썼다.”
영화는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라는 제사용어로 단락을 구분해 하나의 제사처럼 진행된다.
- 촬영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영화가 선댄스에서 상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한 것도 신기하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도 없었고, 제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첫날부터 잇달아 매진된 적도 없다. 이런 게 기적 아닌가.”
- 좁고 어두운 동굴(큰넓궤)에서의 촬영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천장이 낮으니 장비를 나르는 것도 힘들었다. 20여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1m 간격으로 누워서 연탄 나르듯이 장비를 전달했다. 바닥이 돌출돼 촬영도 쉽지 않았다. 한 명의 일손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촬영 스태프의 사촌동생은 제주도에 놀러왔다가 군인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새벽 6시까지 촬영하고 심부름도 했다. 너무 미안한데 절박하니까 보낼 수가 없었다.”
<지슬>에는 ‘끝나지 않는 세월 2’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4·3사건을 담은 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을 찍다가 2005년 뇌출혈로 사망한 김경률 감독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 고 김경률 감독이 총 제작지휘로 이름이 올라 있는데,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대표감독은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같은 분이다. 그분들은 어찌보면 상위 1%에 속한다. 나머지 99%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뚝심과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지만 성공의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한다. 이런 99%의 감독을 대변하는 사람이 고 김경률 감독이다. (김)경률이형은 영화에 파묻혀 살다 4·3사건을 다룬 영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4·3의 또 다른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형의 묘소에 찾아가 담배를 올리고 ‘같이 제작하자고 섭외’했다. ‘나는 산 자 입장에서 찍을 테니, 감독 하고 싶은 형은 죽은 자 입장에서 연출해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형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돌아가셨어도 영화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든 왔을 분이다.”
<어이그, 저 귓것>(2009)과 <뽕똘>(2011) 등 그의 전작은 1000만원 미만 제작비로 찍었지만 4·3사건을 다룬 이번 영화는 2억5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전세보증금까지 빼서 제작비로 충당했다. 4·3사건의 시발점이 된 3월1일에 맞춰 지난 1일 제주도에서 먼저 개봉했다. 개봉 전 전화로 전회 매진됐다. 단 7개 스크린에서 11일까지 8700명의 관객을 모았다.
- 영화제 수상에 이어 제주도 흥행이 좋아 기쁘겠다. 어렵게 찍은 영화 아닌가.
“반가운 일이지만 기분 좋다고는 말 못한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영화를 보러 오신다. 다행히 (4·3사건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보러 온다는 건 영화적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그분들은 말씀도 없이 가만히 지켜만 보신다.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 엄숙한 시간과의 만남이다. 그분들이 극장에 오시는데 관객 많이 든다고 기분이 좋겠나. 마음이 아프고 울컥…, 하는 심정이다. 영화로 전 국민이 4·3사건을 이해하고, 정부가 나서서 제스처를 취하고, 미군정이 사과해도 기쁜 일은 아니다. 그 역사가 기쁨이 될 수는 없다.”
- 자의든 타의든 독립영화계의 롤모델이 됐다.
“<지슬>이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뿌리이기도 하고 책무이기도 했다. 동떨어진 시대에 산다고 무심했던 데 대한 내 숙제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한국 독립영화의 책무는 내가 질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작가다운 태도로 작업하는 게 작가의 일이다. <지슬>은 먼 길을 가는 동안 잠깐 올라간 계단 같은 거였다. 힘도 좀 주고 장비도 좋은 걸 쓰면서 분에 넘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성과가 좋으니까) 더 짐을 얹어 부담을 주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고 싶지 않다. 스스로 계단에서 내려가 내 길을 찾아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올라갔으면 내려가는 길도 스스로 걸어야 한다. 걸어 내려가는 게 실패하는 건 아니다. 다음 작품은 체에 물 뜨듯 조용하게 해보고 싶다.”
■ 영화 <지슬>은 제주 4·3사건 소재… 이름 없이 떠난 민초들의 이야기 독립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무차별한 민간인 학살을 피해 산속 동굴로 대피한 주민들과 그들을 쫓는 토벌대 이야기다. 1948년 미 군정하 당국은 제주도에 소개령을 내렸다. “해안선 5㎞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흉흉한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동굴로 몸을 피했지만 하루 이틀 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지고 나온 식량은 지슬 몇 알이 전부.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주민들은 동굴 안에 둘러앉아 지슬을 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 먹이 걱정을 한다. 자식들의 혼사 같은 평범한 일상도 나눈다. 그러나 토벌대는 순박한 주민들을 ‘빨갱이’이라는 죄목으로 처단한다. 마을을 불사르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하면서 동굴 속 마을 사람들까지 쫓는다. 피난민들에게 소중한 식량인 지슬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산으로, 토벌대의 인간애를 상징하는 물건으로도 등장한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멸 감독은 이름 없이 숨져간 희생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토벌대가 휩쓸고 지나간 빈집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제기에서 시작된 제례는 희생자들의 지방을 태우면서 절정을 향한다. 출연진 대다수도 제주 사람들인데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도 여러 명이다. 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 방언이라 한글자막을 달았다. 덕분에 ‘한글자막이 있는 한국 영화’라는 독특한 작품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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