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 - 인상학 관점에서 바라본 영조와 사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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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블라블라

영화 ‘사도’ - 인상학 관점에서 바라본 영조와 사도세자

9월16일 개봉한 영화 <사도>가 흥행 질주를 달리고 있다. <사도>의 이러한 흥행속도는 천만관객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인물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위대한 왕으로 알려진 영조와 정조, 그 사이의 사도세자.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식을 원수처럼 생각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아들. <사도>는 우리에게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 소통의 부재’,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이에 공감하고 있지는 않는가?



■영화 <사도>

영화 <사도>의 역사적 등장인물인 영조와 사도세자, 이를 연기로 승화시킨 배우 유아인에 대해 인상학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어진(왕의 초상화)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어진을 통하여 공통적인 왕들의 특징이 이렇다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도 현존하는 태조와 영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이나 역사적인 기록 등을 통해 살펴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이마가 넓고, 눈과 눈썹사이(일명 전택궁)는 멀며, 눈은 가늘고 길다. 또한, 코는 높고 길며, 턱 선이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조의 이마 또한 넓다. 머리에 쓴 익선관 아래로 보이는 이마의 넓이로 가름해보면 좁아 보이지는 않는다. 영조의 어진을 보았을 때,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이 눈과 코 부분이다. 연잉군 시절의 눈은 다소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나, 51세의 영조의 눈은 나이 들면서도 눈꼬리가 쳐지지 않고 오히려 치켜 올라가 그 위엄과 기세를 느끼게 한다. 52년을 재위하며 조선의 왕들 중 가장 장수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을, 바로 힘이 있고 또렷한 눈매에서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그의 뛰어난 예지와 통찰력도 엿보인다.

옛 어르신들이 눈과 눈썹사이가 넓고 두둑하면 잘 산다고 말씀하시곤 했었는데, 조선 시대에도 눈과 눈썹사이가 넓은 것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효종실록>에 의하면, “위에서 눈과 멀리 눈썹을 그리고, 넓은 소매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면, 아래에서는 더욱 심하게 눈썹을 높이 그리고 넓은 소매를 좋아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숙종실록>에서도, “높은 상투와 넓은 눈썹을 위에서 좋아하면, 아래에서는 더욱 심한 법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관상은 눈과 눈썹사이가 넓은 것이 왕실에서 선호되어 일반백성에까지 내려가 널리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조 또한, 눈썹이 눈 위로 상당이 높이 있다. 눈썹과의 넓은 간격으로 인해, 눈의 예리함이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영조의 얼굴에서는 무엇보다도 매부리코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인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코가 매부리와 같은 모양이면, 꾀가 많고 고집이 세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감정기복이 심하다’라고 할 수 있다. 영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보면, ‘성격이 다소 급하고 감정적이며, 변덕이 심하고 눈물이 많으며, 화를 잘 냈다’고 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에서도, 세종은 ‘노하다(怒)’란 언급이 16회, ‘크게 노하다(大怒)’라는 언급이 3회 정도 나오는데 비해, 영조는 ‘노하다’가 135회 정도 언급되고 있고, ‘크게 노하다’란 언급도 16회 정도나 된다. 이는 세종대왕에 비해 확실히 화를 많이 냈고, 평소에도 감정 조절 없이 본인의 기분을 그래로 표출했을 개연성이 엿보인다. 다혈질적인 성향으로 자식인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아버지의 비정함은 코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왕들의 모습에서도 높은 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태종실록>에 의하면, “태조가 높은 코(隆準)에 용의 얼굴(龍顔)이었는데, 태종의 용모가 이를 닮았다.”라고 하여, 태조의 모습을 닮은 태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융준용안(隆準龍顔)이란 한(漢)고조 유방의 얼굴상을 표현한데서 비롯하였는데, ‘콧대가 우뚝 솟고 얼굴 생김새가 용과 같음’을 나타내는 말로 임금의 상(相)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다. 영조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신하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카리스마 있던 왕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은, 미간(눈썹과 눈썹사이)부근부터 쭉 뻗어 내려온 높은 코의 특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법령(팔자주름) 또한, 뚜렷하여 단정한 붉은 입술을 잘 감싸고 있으며, 이에 중후한 멋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사도세자와 배우 유아인

이제 사도세자의 얼굴을 돌아보자. 사도세자의 초상화가 없고 그의 외모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별로 없어서, 그의 모습을 아버지인 영조의 젊은 시절을 통해 유추해 보고자 한다. 연잉군 시절 영조의 모습은 그 분위기가 현재의 유아인과 많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갸름한 얼굴선에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살아 돌아온 사도세자를 보는 듯하여, 영화를 보는 내내 더욱 몰입하게 되는 건 아닐까.

사도세자라 생각하고 유아인에 대해 분석해보면, 갸름한 얼굴에 높은 코가 인상적이다. 코가 크고 높으면, 자존심이 세고 자기주장과 강하다. 아버지와 부딪치며 자기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고, 신하들의 조력을 얻어내지 못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사도세자의 코도 그러하였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유아인의 다소 튀어나온 듯한 눈썹모습에서, 사도세자가 죽은 나이가 28세임을 감안할 때 무언가 더욱 절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눈썹 부위가 튀어나오면, 하는 일에 막힘이 있거나 곤란을 당할 수도 있다. 눈썹에 해당하는 나이가 30세 전후이니, 유아인의 눈썹 분장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도세자의 콧대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살아서 왕이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역사의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 인상학적 관점

영조의 얼굴을 살펴보면, 나이 들면서 젊은 시절에 비해, 보다 안정된 눈빛, 길어진 인중(코와 입사이의 골), 깊어진 법령, 넉넉해진 턱선 등 변화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영조의 경우 매부리코의 성격이 그대로T 생활 속에서 나타난 것이 아쉽지만, 베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그 모습 또한 아름답게 변해가리라 생각한다.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라 하여 무분별한 성형이 만연하고 있는 시대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보면 어떨까하는 심정이다. 얼굴 모습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떠한 태도’로 생활하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간다.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사도’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년연장과 청년실업, 3포 5포 7포 이어서 n포 세대,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 노령화사회 등이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세대간의 ‘갈등, 소통의 부재’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 노령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가야 할 젊은 세대들은 자기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젊은 세대는 항상 미덥지 않고 못마땅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다보듯,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가 우뚝 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다독여주는 멘토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사도세자가 태어났을 때, “즐겁고 기뻐하는 마음이 지극하니, 그 감회 또한 깊다”고 한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해, “천품(天稟)이 뛰어나고 덕과 기량이 관후하여, 걱정이 없다”, “천자(天資)가 탁월하여 매우 사랑하였다”(영조실록)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도는 죽임을 당할 정도의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으랴마는 영화의 대사 중에,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무언가 뭉클함이 몰려온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누가 알겠는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홍연수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인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