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비디오>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개인용 비디오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시청자 자신이 경험한 아찔한 상황을 직접 찍어 제작진에게 보낸 영상을 방송하기도 하고, 제작진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진행하는 상황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몰래카메라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험 대상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방송인지 모르고 한동안 크게 뜬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가, 제작진의 카메라를 발견하고 멋쩍게 웃어 넘기곤 했다.
타인이 당황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몰래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도 1990년대 제작된 적이 있다. 유명 인사들이 몰래카메라의 실험 대상이었는데, 몰래카메라를 통해 친한 친구와 함께 장난을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기도 했고, 유명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시청자들의 기대에 맞는 상황을 연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고, 출연자 섭외가 어려워지면서 이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최근 채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몰래카메라 형식을 도입한 프로그램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경우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몰래카메라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겪는 ‘몰래카메라’는 재미를 넘어서 공포의 순간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가끔은 출연자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2015년 방송된 <무한도전-나는 액션배우다> 편에서도 문제적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최종 목적지 정보만을 가지고 차로 이동하던 출연자들은 과거의 유사한 방송을 떠올리며,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후 출연자들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갑자기 검은 차량들이 멤버들의 차를 둘러싸고, 차에서 내린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몰려들어 차를 부수기 시작한다. 화면 속 멤버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비백산이 된다. 혼이 빠진 출연자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예능 프로그램 속 장면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tvN
이러한 상황은 많은 인기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종영한 tvN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편>에서도 제작진들은 여행준비가 안된 출연자들을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무작정 태운다. <꽃보다 청춘>은 지금까지 ‘페루’ ‘아이슬란드’ 편이 방송되었고 이번주 ‘나미비아’ 편이 방송될 예정이다. 나미비아 편 역시 주요 출연자들이 아무런 통보없이 촬영지인 나미비아로 끌려가는 장면이 예고된 상황이다.
지난 설날 방송된 KBS <본분금메달> 역시 여자 아이돌 가수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진행했지만, 가학적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비주얼 유지 테스트’ ‘정직성 테스트’ ‘분노 조절 테스트’ ‘상식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출연자들에게 전달했지만, 사실은 모두 몰래카메라였다.
제작진은 여성 아이돌 가수들이 노출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극한의 상황으로 몰았고, ‘아이돌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제작진의 강요에 출연자들은 그 불편함을 내색할 수 없었다. 카메라에 비치는 매니저들의 모습 역시 이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SBS의 <사장님이 보고 있다>는 한발 더 나아가 제작진과 회사 주요 임원이 함께 아이돌 가수들의 능력을 평가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최근 방송에서 진행되는 몰래카메라의 공통적 특징은 제작진에게 큰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출연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위해 약자의 위치에 놓인 출연자들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지만,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지닌 약자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땅콩 회항 사건과 강남 아파트 경비원 사건 등은 벌써 잊힌 것인가.
예능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재미’는 출연자의 가학적인 상황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약자를 불편하게 하는 폭력적 상황을 즐기는 우리 모두가 비판해마지 않았던 ‘갑’의 위치를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려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짜여진 상황을 비자발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아닌, 그들이 지닌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예능이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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