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안철수 두 대선 후보의 단일화 룰 협상을 위한 첫 모임이 지난 13일 서울 통의동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열렸다. 살벌한 정치 협상이 한옥 갤러리라는 문화적 공간에서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정치문화의 작은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신선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보여주는 최소한의 정치적 제스처만큼이라도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은 진화할 수 있을까.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이 시점에서 대선 후보들은 과연 문화에 대해 어떤 담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출처; 경향DB)
영화광으로 알려진 안철수 후보는 영화인들과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한 모임을 가졌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해 스태프들을 격려했는가 하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하고 나서는 “산업화나 산업 규모도 중요하지만 문화 콘텐츠는 고생한 분들이 인정받는 것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이고, 한 나라가 이로 인해 평가받는 것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그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국민’들이 듣고 싶은 건 이런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는 이 정권 들어 문제가 끊이지 않은 영화진흥위원회를 어떻게 정상화하고 독립영화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과 그를 뒷받침할 문화에 관한 철학과 비전이다.
물론 안 후보는 한 미술 전시회에 참석해 예술과 우리의 삶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이 훌륭한 전시회에 오시는 많은 분들께서 고흐가 가진 인간의 소명감, 그리고 치열했던 예술혼을 가슴에 담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해 정치인답지 않은 감동을 줬다. 이런 신선한 충격은 참으로 반갑지만, 그 자신이 집권할 경우 어떠한 문화정책을 펼칠지 그 얼개조차 아직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문재인 후보는 어떤가. 그는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슈퍼스타K>에 출연해 우승한 가수들의 CD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안에는 버스커버스커, 허각, 울랄라세션, 서인국 등 정말 이제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가수들의 CD가 들어있는데, 그 밑에 ‘문화입국, 문화대통령’이라고 쓰여진, 선물만 있는 게 아니라 숙제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문화가 행복도 주지만 경제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죠. 출마할 때 제가 4대 성장을 얘기했는데 그 가운데는 창조적 성장, 문화를 통한 미디어 성장동력을 만들자는 데, 상당한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류나 K팝으로, 특히 젊은 세대가 직접 보여주고 있으니까 국가가 지원을 조금만 제대로 하면 훨씬 더 성장할 것 같습니다.”
문 후보의 경우도 문화대통령이 되는 것이 자신의 과제임을 인지하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나, 역시 현재까지도 문화정책의 각론은 부재하다. 야권 대선 후보라면 방송통신위원회 해체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낙하산 인사와 자율성 침해로 엉망이 된 방송사들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들의 운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성’ 대통령임을 자임하는 박근혜 후보 역시 여성과 문화예술인,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문화정책이나 문화 전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내놓은 적이 없다.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찾아 “아무리 첨단기기를 사용하더라도 창작과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 문화산업이 일어나야 일자리도 많이 생기는데…”라고 말한 정도다. 그가 집권할 경우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연 어떤 문화정책을 펴 나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대통령 후보들은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이제 문화적 주류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는 우리 대중문화뿐 아니라 불교문화를 비롯한 전통문화, 그리고 이제 문화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중심 역할을 하는 미디어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집권 후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분명히 밝히고 전문가와 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시점이다.